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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것
2016년 11월 07일 (월) 한자경 교수 -

  우리는 흔히 인간만이 이성을 가져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분노를 조절할 줄 알며, 자기 자신과 우주 질서에 대한 앎을 갖는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탐욕적이거나 멋대로 화내는 자를 ‘인간답지 못한 자’,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보다 더 탐욕적인 존재는 없는 것 같다. 동물은 현재의 배고픔을 채울 만큼만 욕심을 내지만, 인간은 내달 그리고 내년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식량을 쌓아두고, 내 자식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의 풍족한 삶을 위해 돈을 긁어모은다. 또 인간만큼 쉽고 크게 분노하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같은 종족끼리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 테러를 하고 전쟁을 하며 무기를 만들고 핵폭탄까지 만든다.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탐욕과 분노의 사회, 돈과 무기의 사회이다. 인간의 이성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적보다 더 빠르게 적을 죽일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다. 이 이성으로 과연 인간과 우주에 대한 바른 앎을 가질 수 있을까?

  마음이 탐욕과 분노에 빠져 있으면, 그 마음은 결국 계산적 이성으로 바뀌고 만다. 마음은 왜 탐욕과 분노의 장벽에 갇히고 마는 것일까? 우리는 왜 스스로 우리 마음 안에 탐욕과 분노의 독(毒)을 키워가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자기보존 본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 유독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새로운 종류의 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만이 수양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인간만이 수양이 필요한 존재다’라는 말로 이해한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분노는 인간 공동체를 파괴하고, 결국 지구 전체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대단한 이성을 갖고 왜 스스로를 탐욕과 분노의 장벽에 가두고 마는 것일까?

  나는 우리가 탐욕과 분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일체 존재가 하나로 엮여 있다는 사실, 우리가 지금 하나의 지구 위에서 공생·공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로 엮여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서로 연관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마치 시소의 한끝이 올라가면 다른 한끝이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내 지갑에 두둑히 쌓이는 돈은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털려나온 돈이고, 내가 내일 먹기 위해 쌓아둔 식량은 누군가 살기 위해 오늘 먹었어야 할 식량일 수 있다. 대기업의 번영은 중소기업의 몰락과 연관되어 있고, 한 국가의 번영은 타 국가의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얽혀있다. 공생?공멸을 함께 할 운명공동체라는 것은 이처럼 함께 얽힌 채 우리가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자의 탐욕과 빈자의 분노는 극에 달할 것이며, 극에 달한 분노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을 꿈꾸며 불길로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불길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이처럼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운명공동체라는 것에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생의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는 서로 적대적 경쟁자가 아니라 본래 서로 하나로 공명하는 한마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탐욕과 분노에 빠져드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의 분별이 작동하기 이전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 너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고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며, 그렇게 우리가 불이(不二)의 한마음이라는 것을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분별적 이성은 너와 나를 현상의 차이에 따라 서로 분리된 각각의 개별자로만 알 뿐, 너와 내가 근본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의 생명의 무한 반복으로 무한한 생명체가 출현한다는 것, 따라서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렇게 모두 하나이고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불이를 모르기에 우리 마음 안에 너와 나의 분리와 분별이 일어나며, 결국 나를 높이고 너를 낮추는 마음, 나를 살리고 너를 죽이는 마음, 탐욕과 분노가 일어난다. 한마음의 공명과 공감이 깨어나는 순간 탐욕과 분노는 가라앉고, 이성의 분별과 계산이 시작되는 순간 탐욕과 분노가 일어난다. 이처럼 탐욕과 분노는 나와 너의 불이, 인간과 자연의 불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석가는 “탐욕(탐심)과 분노(진심)는 어리석음(치심)에서 온다”고 했고, 장자는 탐욕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어린아이의 마음 ‘적자지심(赤子之心)’이라고 했으며, 예수는 탐욕에 이끌려 행동하는 자를 보고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바라보면, 그로 인해 상처받은 자가 느낄 분노가 서글프게 다가온다. 우리가 모두 한 생명이고 한 마음이라는 것을 자꾸만 더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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