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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것은
2016년 11월 07일 (월) 서현정(커미·15) -

  지난 수요일, 이해인 수녀님이 채플을 방문했다. 사랑하는 마음, 아픔과 시련을 나누는 것, 행복해지는 방법 등 따스한 말들을 전해주고 가셨다. 갑자기 울컥 시(詩)가 그리워졌다. 그 담담한 언어의 잔잔한 울림이, 나는 너무 그리웠다.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입만 열어도 온갖 비릿한 말들이 오고간다. 연일 뉴스에서는 새로운 사실들이 폭로되고 허망함이 목을 죈다. 태풍의 눈에 있었던 이화여대를 다니는 우리가 겪는 허망함은, 그 어쩔 수 없는 비교에서 오는 무력감은 너무도 컸다. 힘겹게 손맞잡으며 넘어간 산 뒤에는 너무도 큰 산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위치에서 공부하는 것인데 이게다 무용지물일까 두려워 입만 열게 된다. 그렇게 세태를 비판하다보면 자꾸만 입이 쓰다. 나는 그 무력감 속에 홀로 침전하는 기분이다.

  갑자기 한파가 몰아쳤던 토요일.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라도 달라질까 해서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촛불을 밝혔다. 혼란스러운 시국 속 나를 괴롭힌 것은 갑작스레 덮쳐온 찬바람이 아닌 우리의 외침이 그곳에 닿을지 모르겠다는 불확실함이었다. 그 어지러운 마음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맞았다. 시에 담겨져 있던 정갈한 언어들은 메마른 일상에 ‘새로운 포말이 되어 무작정 달려<파도의 말>’왔다.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할 땅<민들레의 영토>’ 위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혼자 시를 읽으며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고독 속에 헤아려<나를 길들이는 시간>’ 본다.
그 시를 이어 수많은 지시적 단어들의 나열을 읽어내려갔다. 시는 곧 도피처였다. 칼로 재단된 현상언어들의 혼잡한 나열 대신, 몽글몽글 맺히는 감정의 편린들을 취했다. 나는 그 쌉싸름한 현실로부터 도망쳐왔다. 그렇게 낭만의 극단에서 서있었다. 낭만은 대안을 만들어내지도, 현실을 타파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그 낭만은 희망을 품는다. 피하고자 도망쳐 다다른 끝에는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님의침묵-한용운>’을 수 있는 순수와 진실이 있다. 그 속에서 원초적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시는 현실의 어지러운 고뇌 속에서 허우적대 오던 탕자에게 건네는 한 모금의 물과 같다. 그렇게 그 종이의 담백한 언어로 현실의 나를 다독인다.

  일제강점기, 그 혼잡했던 시대 속 순수 서정을 추구했던 시문학파의 의미가 혼잡스러운 세상이 와서야 와닿는다. 그 때의 우울함, 애수, 불안을 뚫고나가는 것은, 시 문학의 담담한 위로였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시에 위로받고 시에 힘을 얻으며 그렇게 허망함을 견뎌낸다. 그렇게,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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