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죽음만이 완쾌인가
산업재해, 죽음만이 완쾌인가
  • 이대학보
  • 승인 1991.0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권·기업 이중주에 노동자만 희생
『석달이 지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해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요. 요양은 커녕 검진 한번 제대로 못받고 안타깝게 죽어갔는데 이 차가운 콘크리트위에서 또한번 살해를 당하는 셈입니다.

』 원진레이온 직업병피해 노동자협의외(이하 원노협)고문 이정재씨의 말이다.

기업과 노동부의 무관심에다 꽃샘추위까지 가세해 더욱 황량항 미금시(주)원진레이온(이하 원진)정문앞에는 지난 1월 5일(토)이황화탄소중독으로 숨진 김봉환씨의 빈소가 차려져있다.

정확한 사인규명과 정당한 산업재해(이하 산재)보상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동료노동자들이 3월 31일(일)부터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산재보상 요구농성이 「노동자의 또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치부되기에 산재의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지난 10년간 생산현장에서만 1백 35만명이 다쳤고 1만 5천명이 사망, 20여만명이 영구불구자가 되었으며 각종 중독등 직업병환자들은 이루셀수 없으나 보상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최저생계비도 이르지 못하는 저임금에다 주 60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은 노동자시인 박노해씨의 말처럼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것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산재와 신종직업병들은 이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불치병으로 분류되는 이황화탄소중독증은 지난 2년간 원진에도 만해도 72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김봉환씨는 77년부터 원진에서 근무하던중 말을 더듬고 심한 두토과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83년 근로가 더이상 불가능해지자 직업병이라는 인식을 못한채 자진 사퇴했따. 90년 급기야 전신마비와 고혈압으로 쓰러진후에야 김씨는 원진 직업병을 전문진료해온 사당병원에서 이황화탄소중독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이에 김씨는 회사에 산재요양신청서를 청구했으나 회사측은 김씨가 비유해부서인 원액 2과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결국 김씨는 변변한 치료한번없이 시름시름 앓다 사망한 것이다.

『작업장에 들어서면 숨이 콱콱 막히고 눈물이 날 정도도 가스가 차있어요. 2차대전때는 살상용으로 사용됐다는데 우리는 안전시설 하나없는 그곳에서 사장돈벌라고 뼈빠지게 일했어요. 여공원들은 아이를 더이상 낳지않는다는 확인이 있거나 과부라야 채용할 정도였다구요, 그런데도 김씨가 단순히 고혈압이라니 정말 분통터지는 일입니다』방사정비과에서 5년일한후 다리를 절고 중풍증세에 말도하기 힘들다는 동료 박영덕씨의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원진 직업병 전문진효병원인 사당의원장 김록호씨도 같은 의견이다.

『이황화탄소는 혈관과 신경에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팔·다리 장애는 물론 언어장애, 급기야는 심한 정신장애와 중풍으로 식물인간이 됩니다.

보상금도 중요하지만 산재의 근원을 없앨 작업환경의 철저한 개선과 전·현직 노동자 전원에 대한 건강검진을 당장 실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사와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작업환경개선과 감시, 감독은 커녕 전문의사진당을 무시한채 산재요양신청조차 거부하기가 다반사이다.

『원노협과 유족의 끈질긴 요구로 결국 회사와 노동자가 추천한 의사 4명이 「직업병 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김씨의 사인판정을 받자는 합의를 얻어냈죠. 그러나 회사가 판정의뢰 공문을 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발부 하지 않는 등 무성의하고 기만적인 태도로 아직까지도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이씨의 말대로 회사측은 갖가지 허구적인 수법으로 유족과 동료노동자들이 제풀에 꺾이기만 바라는 태도를 보이고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시신팔아(?)돈 몇푼 더받으려고 어거지만 쓴다」,「관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등 악성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게다가 정식으로 회사측의 요구가 없이는 공식적인 진단결과를 발표할수 없음에도 「판정을 내리지 않는 의사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책임전가를 일삼는데다 「직업병이 아니라고 판정났으니 동요하지 말라」는 허위공고문을 사내에 붙이는등 기존노조와의 연대마저 방해하고 있다.

이에 매일 열리는 규탄대회에 참석하였으나, 「회사에 찍힌다」며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주위 만류로 그저 「뜻있는 동지」라고만 밝힌 원진노동자는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에 우리가 주저앉는다면 어떻게 우리 노도아ㅈ 삶의 질적향상을 이루겠습니까? 원진의 많은 노동자가 함께 싸워나갑시다』라며 분노를 표출한다.

규탄대회를 시종 감시하고 평화행진을 가로막는 전경들. 이렇듯 정부조타 철저하게 회사와 결탁해 있어 노동자들의 분노는 확산될수 밖에 없다.

한나라의 직업병, 산재발생률은 그곳의 노동조곤과 삶,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것인데 보상은 고사하고 산재예방 조처의 움직임조차 없이, 노동자와 시민의 요구를 공권력·금력으로 억누르고 기만하는 기업과 정부에게 더이상 「생명과 건강에의 권리선언」을 유보할수 없다는 것이다.

김봉환씨 장례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노동과 건강연구소」연대사업위원장 김은혜씨는 『김씨의 사인규명과 보상은 당연한 「인간의 권리」이며 김씨를 부활케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산재가 우리의 일」이라는 기업과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