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아침 밥상에 앉은 딸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목표량 김치 5조각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기 반찬이나 계란을 집을 때와 김치를 향해갈 때의 젓가락 이동속도가 다르다. 

  요즘 어느 집이나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7080 이상의 연령대가 좋아하는 음식과 그 아래의 젊은이들의 식성이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1998년 즈음인가 처음으로 미국학회에 참석하게 됐다.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 아침은 숙소에서 주는 빵과 시리얼을 먹고 점심은 학회에서 주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저녁은 함께 참석한 선생님들과 그 지역 특색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2일째 되는 날 스테이크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에 갔다. 에피타이저로 새우 칵테일이 한 접시 나왔다. 다음으로 큰 그릇에 수프가 나왔다. 물론 1인분이었다. 메인요리는 책상만 한 접시에 커다란 스테이크가 나왔다. 유명한 요리사가 요리하고 그 굽는 방법이 특별한 전통 있는 스테이크로 입에 살살 녹는 맛있는 스테이크라고 했다. 이미 배가 부를 대로 부른데다가 그 훌륭한 스테이크를 먹는데 나는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식은땀이 나고 울렁거리더니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것을 다 토해 기진맥진해 있었다. 다음날 기운이 하나도 없이 학회에 참석했다. 같은 병원의 과장님께서 오늘은 현지 한국식당에서 불고기를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음식 말만 들어도 속이 좋지 않았다. 숙소에 가서 쉴까 하다가 따라나섰다. 한국식당에 도착하니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가 차려져 있고 콩나물 무침과 나물들이 함께 세팅되어 있었다. 갑자기 입에서 침이 돌아 나는 참지 못하고 종류별 김치와 나물을 집어먹었다. 지금까지 속이 불편했던 것이 싹 사라지고 시원함이 찾아왔다. 그때의 그 편안함을 잊을 수가 없다. 김치를 얹어가며 밥을 한 공기 다 비우고 나니 나는 이미 아픈 사람이 아니었고 다시 웃고 떠드는 즐거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김치가 참 사랑스러운 저녁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젊은 사람들에게 하면 거 참 이상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이미 김치를 먹지 않아도 너무나 편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학생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늘 위암이 걱정스러운 나라였다. 암 발생률과 암 사망률 1위가 단연 위암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장암의 순위가 점점 올라와서 남녀 모두 암 발생률 3위가 되었고 65세 이상의 여성에서는 1위의 암이 되었다. 

  대장암의 위험인자는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고 식이섬유 섭취가 적은 경우이다. 식이섬유 섭취가 많은 남아프리카지역에는 대장암 발생이 적지만 식이섬유 섭취가 적은 서구지역은 대장암 발생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식이섬유가 대장암을 예방하는 기전은 식이섬유가 대장을 자극하여 소화된 음식물 찌꺼기들을 대장에서 이동시키는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장통과시간이 빨라지면 음식물 속에 들어있던 독소들이 대장에 접촉할 시간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식이섬유를 많이 섭취하면 대변량이 늘어나 변비가 예방되는데 대변량이 증가하므로 음식물 찌꺼기 속의 독소들이 희석된다는 것도 하나의 기전으로 설명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장 점막을 자극해서 세포분열을 증가시켜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담즙산과도 식이섬유가 결합하면서 대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중학교 1학년 기술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기술에 대한 내용이 있다. 뛰어난 건축기술, 인쇄기술, 제조기술 등을 다루고 있다. 그곳에 생명기술의 한 부분으로 김치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김치 속에 들어있는 영양분과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효능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당연히 중요한 시험문제 후보이므로 그 부분을 아이들이 외워야 한다. "김치는 훌륭한 식이섬유 공급원이며 유산균이 많아 대장을 튼튼하게 해준다. 여러 가지 야채가 섞여 있는 발효 식품으로 여러 종류의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있다. 면역 효과가 있고 항암효과가 있는 과학적인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음식이다."

  시험공부를 하고 나온 딸이 저녁 밥상에 앉았다. "배추 잎사귀는 자신이 없지만 줄기 부분이라도 먹어볼게요. 대~한민국에 축구만 있는 게 아니라 김치가 있네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김치를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렇게 억지로 김치를 먹어가며 공부한 딸이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그다지 식성이 변하지 않아 걱정스럽지만, 우리 집에 있는 딸 뿐이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김치 많이 먹고 장이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김치가 젊은이들의 입맛에도 맞고 외국인들의 입맛에도 맞게 개발되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음식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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