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새벽, 5층짜리 원룸 건물에 불이 났다. 새벽이라 큰 인명 피해가 우려됐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살 수 있었다. 그 한 명은 바로 전부를 구한 한 성우 지망생이었다. 제일 먼저 대피했던 그는 다른 사람들의 방에 일일이 초인종을 눌러서 이웃전부를 구한 후 결국 옥상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런 사명을 갖지 않은 일반인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영웅’이라는 존재를 기다리고 갈망한다. ‘히어로 물’ 영화가 유행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 영웅이 우리 곁에, 우리 주변에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로 살아가기도 한다. 

  위험에 빠진 노부부를 구한 청년, 지하철에 떨어진 남성을 구한 학생, 그리고 불이 난 건물에서 사람들을 깨운 성우 지망생. 이 모두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영웅’이다. 그들의 존재는 퍽퍽한 세상에 한줄기 빛을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자신을 빛내려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영웅들은 이기적인 현대인들의 마음을 환기하면서 반성하게 만든다. 

  우리 주변에 영웅이라는 존재는 히어로 물에서 본 것처럼 헐크처럼 강한 힘을 갖고 있거나 아이언 맨 슈트처럼 비싼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단지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구한다. 이기심이라는 사람의 본능을 억누르고 희생이라는 어려운 걸 이끌어내는 셈이다. 

  그 꿈 많던 20대 성우 지망생. 어떤 마음이 그를 다시 불이 난 원룸 건물로 돌아가게 한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가 다시 원룸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꿈,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아마 그는 다시 불이 난 건물로 들어갈 때 자신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임을 짐작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소중한 목소리는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겠지만, 그의 마지막 목소리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영웅’을 갈망하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 영웅이 되어준 그는, 평생 잊지 못할 마지막 목소리로 문을 두들겨 생명을 구해낸 가장 소중한 목소리를 낸 성우이다. 초인종을 누르며 사람들에게 불이 났으니 어서 피하라는 말을 소리쳐서 외친 초인종 의인.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더 많은 ‘영웅’들이 우리 사회 속에서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