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에이전트 Lie&Fung

  몇 달 전만 해도 서울의 그 많은 빌딩 중에 설마 내가 일할 사무실 하나 없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내가 직장인이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다니 세상일은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듯 하다.  취업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거나 나처럼 사회 초년생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이화인들에게 심심찮은 위로와 도움을 주고 싶어 글을 쓴다.     

  내 첫 직장 Li&Fung 은 홍콩에 본사를 둔 외국계 무역 에이전트 회사다. 관련 업계 사람이 아니라면 상당히 생소할 이름의 이곳에서 나는 Retail Merchandiser(MR) 의 역할을 하고 있다. MR이 대체 무얼 하는 직업이냐 묻는다면, 옷이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위한 기획-생산-판매의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생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원단과 부자재를 최저가에 수급하여 불량과 부족 없이 전 세계 각지의 공장에 보내고, 만들어진 옷이 매장에 제대로 진열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상품의 품질과 원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MR의 역할이 작지 않다. 

  MR은 옷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 벤더 업체의 담당자 분들과 매일같이 프로덕션을 관리하고 매 시즌 가격을 협상해야 한다. 고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긍정적인 말투와 설득력이 중요하고 협력 업체와 서로 동반자의 입장에서 함께 일을 해 나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옷을 만들다가 생기는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사고를 해결해야 하기에 책임감과 꼼꼼함도 중요하다. 또한, 외국의 바이어, 공장과 소통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과 원단, 옷에 대한 이해도를 가졌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는 단순히 옷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에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학교 경력 개발 센터를 통한 동계 방학 인턴을 거쳐 운 좋게 지난 7월 정식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짧긴 해도 인턴으로 있었던 회사인데 적응하기에 많이 어렵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두 달짜리 인턴과 정직원은 생각한 것보다 그 차이가 훨씬 컸다. 

  본격적인 업무를 분배받아 책임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렇게 두려울 줄은 몰랐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들과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업무 과정 사이에서 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 일쑤였으니까. 옷을 만드는 수많은 세부 작업 과정엔 무엇이 있고 매 시즌마다 어떤 과정으로 가격 협상이 진행되는지 사고가 터졌을 땐 누구와 연락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을 모두 현장에서 그때그때 배웠다. 공부할 때는 교과서와 ppt 자료로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거나 나머지 공부라도 할 수 있었는데 직장에서는 이 모든 걸 내 실수와 질문을 통해 배우는 것이니 그만큼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내 존재가 이렇게 작고 하찮았나? 내가 이렇게 실수를 하고 센스가 없는 사람이었나? 하고 내 모습을 돌아본 적이 많았다. 

 회사 생활은 롤러코스터 같다. 좋았다가 민망했다가 죄송했다가 창피했다가 억울했다가 열심히 했다가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감정들이 수시로 들이닥친다. 실수를 하고 꾸중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 속으로 외친다. '나는 쪽 팔리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실수는 하고 꾸중은 듣게 되겠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전진하는 사회인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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