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위문화, 사회문화적 함의를 찾다
새로운 시위문화, 사회문화적 함의를 찾다
  • 조윤진 선임기자
  • 승인 2016.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관 점거농성 47일째(12일 기준). 이번 시위는 ‘주동자’ 없는 느린 민주주의, 민중가요 대신 등장한 대중가요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위문화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대표자 없는 시위의 한계가 나타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본교 시위만의 정체성은 어떻게 시작됐고 또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본지는 이번 시위에 담긴 사회·문화적 함의를 방법론적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심층 분석하고자 외부 전문가를 찾았다.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미디어학 ▲사회학 ▲여성학 ▲심리학 등 4개 분야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기사는 2회에 걸쳐 연재된다. 이번 호에는 한양대 윤영민 교수(정보사회학과)와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과)가 각각 미디어학과 사회학의 관점에서 시위 방식을 분석, 그 의의를 제시했다.


  “이화여대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소통 문화의 차이에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주로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세대와 텔레비전, 신문 등에 더욱 익숙한 매스미디어 세대 간의 충돌이 일어난 셈이죠.” 윤영민(사진)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9일 통화에서 본교 시위를 ‘문화 충돌’로 설명했다.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는, 각 집단이 속한 문화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수평적, 개방적인 문화와 수직적, 권위적 문화가 공존합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세상이라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어요. 소통 방식과 사고의 틀이 완전히 다르죠.”

  이토록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현상은 현대사회가 문화적 과도기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문화는 끊임없이 부딪힌다. 하나의 문화가 낡은 것으로 간주되고 다른 문화로 대체되는, 말하자면 세대교체 과정에서의 필연적 충돌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본교 사태를 ‘조직적인 학교 문화’와 ‘자유로운 학생 문화’가 부딪히며 분출된 사건으로 본다.

  특히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SNS에 친숙한 소셜미디어 세대다. 주동자 또는 대표자 없이 시위를 이끌어가는 낯선 방식은 SNS의 특성과도 닮았다. “SNS 환경은 더 이상 생산자-소비자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모두가 ‘유저’(user)로서 가치를 공동 창조하는 공간입니다. 누구든지 뜻만 있다면 시작이 가능한 곳이죠. 학술적으론 ‘도구(tool)의 민주화’라고 표현합니다. 이대 시위도 마찬가지예요. 대표자도 없고 영웅도 없지만, 동시에 모든 학생이 영웅이 될 수 있는 형태인 것입니다.”

  일각에선 이번 시위에서 학생들이 미래라이프대학 철회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SNS를 중심으로 한 여론전의 승리’라고 말한다. 실제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퍼진 경찰 진입 영상 등은 여론이 학생 편으로 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SNS가 가진 파급력은 그 어떤 언론 대응보다도 빠르고 강력했다.
 

  “미디어 지형은 과거 일방향적인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쌍방향적인 소셜미디어 시대로 변화했습니다. 신문과 신문, 방송과 방송이 경쟁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모든 유저가 잠재적 독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죠. 이처럼 뉴스 전달에 물리적 제한이 없어진 시대에 SNS는 무서울 정도의 파급력을 지닙니다. 학생들은 이런 문화를 빠르게 체득하고 활용했어요. 반면 이 메커니즘에 익숙지 못한 학교 조직은 신문과 방송에만 집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여론에 대응할 수 있었죠.”

  윤 교수는 그러나 “소셜미디어 세대는 누구나라고 해서 아무나 SNS 상에서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본교생이 특히 SNS를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본교 커뮤니티 사이트 이화이언(ewhaian.com)을 통해 오랜 기간 쌓아 온 상호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화여대 공동체는 커뮤니케이션 자산이 풍부한 집단입니다. 다양한 연령과 성향의 재학생, 졸업생이 ‘이화’라는 단단한 정체성 안에서 이화이언을 통해 결집하고 대화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도 모르게 집단 사회화가 이뤄졌고, ‘높은 동질성’ ‘상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탄탄하게 쌓였죠. 그들 사이의 ‘느슨한 리더십’이 SNS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겁니다.”

  시위가 시작된 지 50일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갈등 해결은 막막한 상황. 윤 교수는 ‘진정성’ 있는 소통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시대에서의 진정성이란 ‘증명 가능한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선 모든 정보가 쌓이고 기록됩니다. 즉, 언제라도 다시 찾아볼 수 있고,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숨거나 숨기면 오히려 소문을 부르고 결과는 악화됩니다. 솔직하게 정면 돌파를 하되, 말이 달라지지 않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해야 해요. 학교나 학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불을 끄려면 물을 들고 불 앞으로 가야 하듯, 불 앞에서 숨어선 결코 불을 끌 수 없습니다.”


  8일 만난 이병훈(사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대 시위는 가치 충돌과 인식 충돌이 뒤섞인 일종의 혼란”이라고 했다.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에는 노사갈등처럼 가치 차원의 충돌, 소통과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인식적 차원의 충돌 등이 있습니다. 이대 시위의 경우 일차적으론 소통이 부재한 상태에서 총장이 독주하는 모습을 보여 인식 충돌이 일어났어요. 이후 시위가 장기화되면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학교와 대학 본연의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는 학생 간의 가치 충돌이 이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죠.”

  이번 시위의 특이점 중 하나는 학생들이 유별날 정도로 순수성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본관에 들어가려면 학생임을 인증해야 했고, 이른바 ‘운동권’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학생은 철저히 배제시켰다. 이 교수는 이러한 시위 방식을 지혜롭다고 평가했다.

  “한국사회에서 운동권, 좌파 집단이라고 한번 매도되면 타격이 큽니다. 만약 이대생들이 외부세력의 지원, 동참에 선을 긋지 않았다면 학교는 물론 여론도 여타 운동권 시위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러나 학생들이 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뜻이 변질되지 않고 선명히 드러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런 차별화 전략이 지금까지 시위를 유지해오는 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연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본교 시위는 종종 성주 시위나 세월호 시위에 비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세 시위가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에서 분명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시위나 성주시위는 각각 노란색, 파란색 리본으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확인하고 그 안의 연대를 토대로 시위를 진행했죠. 성주시민이 철저하게 외부세력을 배제하고 평화시위를 했던 점 역시 이대 시위 방식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경우 국가 책임성 논란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주시위의 경우 정부의 사드 배치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 자기 지역에의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 이익의 관점에서 표출됐다는 점에서 인식과 가치의 충돌로 빚어진 이대 시위와는 성격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교수는 본교 시위가 독자적이며, 시위 형태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봤다. 여론이 중요한 시기가 도래하면서 과격한 형태의 과거 시위를 벗어나 평화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대 시위는 최근의 시위 경향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위 방식 역시 일종의 전략이고 선택이거든요. 앞으로도 이러한 형태의 운동이 호응을 얻는다면 이대 시위가 충분한 시사점을 가질 거예요.”

  이처럼 유연한 시위 형태는 연대의 형식과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액체연대’라고도 불린다. 정해진 틀과 조직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고체연대’와 달리, 대중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으로 새로운 구성이 생겨나고 수평적 관계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광우병 파동 당시의 시위처럼 많은 시민들이 동일한 주제에 함께 분노하고 자발적으로 모인다는 점에서 ‘네트워크형 연대’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액체연대식 시위 형태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그 한계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대중의 공감을 얻기엔 적절한 방법이지만, 자칫하면 장기적·제도적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단발성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체연대는 조직 자체의 유연성은 떨어지더라도 오랜 기간 조직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남아있고 지속성이 담보됩니다. 반면 액체연대는 하나의 이슈 때 확 불거지다가 이슈가 사라지거나 동참할 이유가 약해지면 액체가 증발되듯이 사라져버리죠.”

  이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시위 상황이 해결된 이후에도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내 정책에 관한 민주적 의견 수렴 등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이 장기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선 액체연대의 고체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시위집단이 학교 정책이나 제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학생조직으로 이행되는 것이야말로, 액체연대에서 고체연대로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