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시 무시노(Lucy Mucino)씨

 

<편집자주> 지난여름, 뜨거운 날씨만큼 전 세계 스포츠팬들을 열광케 한 2016 리우(Rio) 올림픽이 성차별로 얼룩진 채 막을 내렸다. 일부 언론에선 땀의 결실을 맺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자 선수들을 외모, 나이 등으로 평가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 사회엔 아직 성차별적 인식이 남아 있고, 이는 리우 올림픽에서 나타났 듯 스포츠 문화에도 드리워져 있다. 이대학보사, 이화보이스(EwhaVoice), EUBS로 구성된 이화미디어센터 해외취재팀은 지난 8월25일~3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를 찾아 스포츠로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한 여성들을 만났다. 


 한 소녀는 남자 사촌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도 축구, 럭비 등 소위 ‘남자들의 운동’이라 여겨지는 스포츠 종목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에게 “여자는 축구를 할 수 없어, 여자다운 배구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녀는 성장기 내내 스포츠 참여에 있어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할 종목을 구분 짓는 성차별적 말을 들어야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왜 그래야 하지?”라는 의문을 가졌다. 바로 루시 무시노(Lucy Mucino)씨의 이야기다.

  무시노씨는 “미디어를 비롯한 사회는 여자가 윗몸 일으키기와 팔굽혀 펴기를 할 수 없다고 보여준다”며 “여자와 남자가 해야할 일을 규정짓는 성차별적 인식은 학교 교실에도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초··고 시절 학교에 다니면서 만난 대부분의 남자 교사에게 ‘남자는 이것을 해야하고, 여자는 저것을 해야 해’라는 규정된 성 역할을 강요받았다. 이런 강요는 그가 스스로 자신을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가두게 만들었다. 실제로 고등학교 이전까지 그는 이렇다 할 스포츠 활동을 한 경험이 없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종목이 모두 남자들의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3년 전,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무시노씨는 학교 식당에서 우연히 ‘걸스 인 더 게임’ (Girls in the Game) 코치 한 명을 만났다. 그는 당시 ‘걸스 인 더 게임’이라는 단체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코치로부터그 단체가 무엇을 하는 집단인지, 또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듣고 태도가 바뀌었다. 코치가 여성 청소년 운동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스포츠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말한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코치는 신체적 건강에 대해 말했고,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 다뤘으며, 자신들의 단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고등학교 럭비팀에 들어가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걸스 인 더 게임 내에서 코치가 말한 모든 것들이 ‘스포츠’라는 하나의 주제로 전달된다는 것에 매료됐다. 그렇게 그녀는 걸스 인 더 게임의 일원이 됐다.

  올해로 설립 21년째를 맞이한 걸스 인 더 게임은 초··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그와 더불어 여성들의 리더십 함양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다. 시카고(Chicago) 걸스인 더 게임에는 현재 15명의 풀타임(Fulltime)직원들과 운동 코치, 그리고 인턴들이 함께하고 있다. 설립 초기 약 100명의 소녀들로 시작한 걸스 인 더 게임은 20년 사이 급격히 성장했고, 작년만 해도 약 3290명의 소녀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무시노씨는 걸스 인 더 게임이 제공하는 수영, 럭비,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가 야외에서 하는 스포츠 활동을 좋아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걸스 인 더 게임에서 그는 자신이 참여하는 스포츠 종목에 대해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았다. 이어 그는 남성과 여성이 해야 할 스포츠를 규정짓던 사회에 그들이 말하는 ‘여성’이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시노씨에겐 스포츠가 ‘여성 루시 무시노’가 아닌 ‘인간 루시 무시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남들이 보기엔 단순히 럭비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무시노씨에게는 인생에 스포츠가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함께 땀 흘리며 경기를 하면서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었어요. 또, ‘어떻게 더 경기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도 배울 수 있었죠. 남성과 여성의 스포츠로 구분 지으며 참여를 막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직접 체험해봐야 해요. 사회가 말하는 ‘여자다운’ 모습에 갇혀있던 제가 스포츠를 통해 리더십있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처럼요.”

  뿐만 아니라 무시노씨는 자신이 스포츠를 통해 성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경험을 다른 학생들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여학생들이 고정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르침’으로 가능하다고 믿었고, 체육 교육을 전공해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실현하기로 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며 성 역할을 특정 짓는 교실에서 여학생에게 ‘너도 남자가 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여자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선생님이 된다면 적어도 교실 안에서는 고정된 성 역할이 여학생들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도록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하지만, 걸스 인 더 게임이 무시노씨의 직업 선택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그는“또래들과 단체 내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리더가 되는 법을 배웠고 내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며 “걸스 인 더 게임이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스포츠 프로그램과 별개로 여성들의 리더십 함양을 위해 걸스 인 더 게임에서 제공하는 ‘틴 스쿼드’(Teen Squad)는 무시노씨에게 어떻게 여성 리더가 되는지에 대한 길라잡이가 됐다. 그는 “한 마을에 가서 서로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는데, 내가 처음 들어 본 일을 하는 여성도 있었다”며 “틴 스쿼드는 내가 어떤 분야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고 전했다.

  틴 스쿼드는 걸스 인 더 게임 소속 여학생과 다양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여성 리더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으로, ‘여성도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틴 스쿼드에 참여하는 소녀들이 직접 인터뷰이에 대한 자료를 찾고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해 진행하는 ‘리더 투 리더 인터뷰(Leader to leaderinterview)’는 그들에게 다양한 직업 분야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틴 스쿼드는 무시노씨가 걸스 인 더 게임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무시노씨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걸스 인 더 게임은 1995년 설립된 단체로, 어린 시절의 스포츠 참여가 각자 분야에서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됐다. 자신이 경험한 스포츠의 긍정적 효과를 지역사회 여성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던 그들은 고심 끝에 여성들을 스포츠 활동에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현재 걸스 인 더 게임은 시카고뿐만 아니라 매릴랜드(Maryland) 주 볼티모어(Baltimore)시, 텍사스(Texas)주 댈러스 시 등 미국 곳곳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After School Program) ▲여름 캠프(Summer Camp) ▲틴 스쿼드(Teen Squad)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걸스 인 더 게임으로 무시노씨가 겪은 변화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아가 사회적인 차원까지 나아간다. 현재 무시노씨는 걸스 인 더 게임에 참여 학생이 아닌 인턴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인턴으로서 ‘여름캠프’에서 이뤄진 설문 자료들의 서류 정리를 맡고 있다. 무시노씨는 “내가 정리하는 자료는 지난 캠프에서 ‘어떤 활동이 잘 이뤄졌는지’, ‘소녀들은 그 활동을 통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등에 관한 것”이라며 “이 자료들은 미래에 소녀들에게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단체 내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그가 하는 일은 결국 미래의 루시 무시노 같은 소녀가 탄생하도록 돕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