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웩(swag) 자신이 잘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 것’, ‘허슬(hustle) 랩으로 살아남기’… ‘윗잔다리에서 싸이퍼(cypher)를!’

  스웩, 허슬, 싸이퍼. 랩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공책에 적어놓은 듯한 필기로 보이지만, 이 문장들은한 소설을 이루는 목차다. 랩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자신의 고민이자 청소년이 가진 고민을 풀어내는 작가가 있다. 바로 10년 이상의 고뇌 끝에 올해 3월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받은 탁경은(국문·05년졸) 작가다. 탁 작가는 지난달 30일 수상작인 장편 소설 「싸이퍼」를 출판했다. 본지는 소설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그를 7일 서울시 성동구 카페에서 만났다.

  청소년 시절부터 글과 관련된 직업을 꿈꿔왔던 탁 작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본교 국문과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문예창작과가 많지 않아서 국문과에 진학했는데 문예창작에 관련된 강의가 하나뿐이었어요. 그래도 국문과 수업도 잘 맞고 교수님도 좋아서 만족스러운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탁 작가는 현재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있다. 그는 글쓰기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약 4~5년 전부터 평일은 글쓰기에 집중하느라 주말에만 강사 일을 했어요. 자연스레 수입이 줄다보니 절약하게 됐고, 부모님이나 쌍둥이 여동생이 가끔 밥을 사주거나 필요한 물건을 선물해주기도 했어요. 등단한 뒤에도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가벼운 아르바이트는 같이 하는게 좋아요.”

  꿈에 대한 막막함이 있던 탁 작가는 ‘일기쓰기’로 두려움을 극복했다. 3~4년 전만 해도 앞길이 캄캄해 글쓰기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미래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일기로 쓰며 마음을 다스렸다. “내적으로 더 단단해진 후에도 불안한 마음이 들면 일기를 썼어요. 먼저 힘든 일을 다 적고 마지막은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면 기분전환이 됐죠. 작가가 꿈이 아닌 분들에게도 일기 쓰는 것을 추천해요. 일기를 쓰다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어요.”

  예술가들은 모두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고 하지만 그는 예외다. 탁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 소설 속 인물이 건네는 말로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를 계획하면 오히려 어색해서 즉흥적으로 창작하는 편이에요. 혼자 집중해서 글을 쓰면 인물들이 말을 건넬 때가 있어요. 그 인물이 자신의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면 그 사실에 집중해서 창작을 이어가죠.”

  그는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보다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에 신경 썼다. “제가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해 글을 써도 독자는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어요. 게다가 작가로서 ‘내가 이렇게 썼으니까 이렇게 읽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래서 저는 주제보다 인물에 더 신경을 많이 쓰죠. 인물과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가 이때 글 쓰기의 희열을 느낀다고 말해요.”

  탁 작가는 2003년 본교 재학 시절 본지 주관 문학상에서 단편소설 「지독한 잠수를 꿈꾸는 동안」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하기도했다. 그는 그때와 달리 작품에 ‘힘을 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작품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쓴소리를 들어요.「지독한 잠수를 꿈꾸는 동안」도 문학성은 나쁘지 않았지만, ‘문학이란 이런 거야, 이렇게 심오해’라는 힘이 많이 들어갔죠. 지금도 작품의 완급조절이 어려워요. 「싸이퍼」는 주인공이 어리다 보니 비교적 힘이 덜 들어갔죠.”

  대상작 「싸이퍼」는 ‘래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박자에 맞춰 자유롭게 표현하는 랩’을 의미하는 힙합 용어다. 그는 싸이퍼를 상호소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제목으로 정하게 됐다. “주인공들이 랩을 하는 인물들이다 보니 랩과 관련된 영상을 참고했어요. 그중에서 싸이퍼 영상을 흥미롭게 봤는데, 서로 번갈아가면서 랩을 하는 모습이 대화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죠. 소설에서도 주인공 도건과 정혁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되기도 하고요.”

  인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탁 작가는「싸이퍼」에서도 유난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 그와 닮은 고등학교 3학년 자퇴생 정혁이다. “도건이는 중학교 2학년이라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적어요. 그런데 정혁이는 ‘내가 랩에 재능이 있는 걸까?’ 하면서 진지한 고민을 계속하죠. 정혁이에게 제 모습이 많이 반영됐어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주인공이죠.”

  「싸이퍼」는 탁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그는 첫 장편 소설로 수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수상 당시 소감을 이야기했다. “예전에 공모했던 다른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결국 수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 수상 소식 전화도 예심을 통과했다는 말인 줄 알고 떨떠름하게 받았죠. 게다가 첫 장편소설로 등단할 줄은 몰랐어요. 주인공 도건이와 정혁이가 도와줬다고 생각해요.”

  그의 대상 수상에는 가족, 특히 쌍둥이 여동생의 역할이 컸다. 탁 작가의 주요 독자인 여동생은 평소 언니의 작품을 꼼꼼히 평가했다. “습작을 지인에게 자주 보여주는 편이에요. 가족 중에서는 여동생이 맞춤법 교정도 해주고 영어영문학과 출신이라 영어 도움도 받았죠. 여동생이 「싸이퍼」에서 도건의 랩 작사를 맡기도 했어요.”

  소설가를 꿈꾸는 이화인에게 그는 선배로서 조언을 건넸다. 글을 쓰면서 지녀야 할 태도로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과 오래 기다리는 것을 꼽았다. “끊임없이 작품에 대해 비판받는 과정이 필요해요. 저도 그 과정에서 아주 아팠지만, 상처받지 말고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성과를 얻기까지 오래 기다리는 것도 중요해요. 일반 회사원보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 기쁜 순간이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회사에서는 자신이 성과를 내도 회사의 성과지만 제가 쓴 작품은 제 것이잖아요. 인생은 가난하게 살지언 정, 기쁘게는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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