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강렬한 색감으로 꽃상여를 표현해 죽음을 다른 세상으로 가는 축제로 본 작품. '무제'(1997)
▲ 2. 타원과 직선 등 기본 도형을 사용해 우주의 삼라만상을 기하학으로 표현학 작품. '무제'(1994)
▲ 3. 먹점을 무수히 찍어 창작에 대한 작가의 의지와 다짐을 드러낸 작품. '무제'(1979)
▲ 4.강렬한 색채를 사용해 세 사람과 나뭇잎, 반짝이는 듯한 금색 선을 표현한 작품. '무제'(1986)

사진=김수안 기자 suek0508@ewhain.net

  파격과 일탈로 한국화의 새 시대를 열었던 고(故) 황창배 작가의 예술과 생애를 재조명하는 회고전 ‘이화화인(梨花畵人)’이 본교 조형예술대학 A동 이화아트갤러리와 이화아트센터에서 17일(토)까지 열린다. 2001년 작고한 황 작가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5년간 본교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연 화가로 꼽힌다. 또한,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한국화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서양화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소재를 최초로 한국화에 도입했다. 그가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탈장르의 리더’, ‘무법(無法)의 자유주의자’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송희경 초빙교수(동양화과)는 “황창배 작가는 ‘정서만 우리의 것이라면 재료가 무엇이든 그것은 한국화’라는 철학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했다”며 “한국화가 가졌던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면서 한국화의 새 방향과 변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본교 전시에는 고인의 유작 11점과 함께 동료, 후배, 제자 약 50명의 작품이 걸렸다. 황 작가의 작품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연대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먹으로 그린 수묵화로 시작해점차 추상미술로 발전하는 그의 작품세계 변화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구성됐다.

  전시실 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1.‘무제’(1997)다. 황 작가가 작품활동 말기에 그린 이 작품은 가로 5m가 넘는 큰 화면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빨강, 초록 등 색색의 아크릴 물감은 울긋불긋한 꽃상여를 표현했다. 형형색색의 깃발도 나부낀다.

  상여를 메고 이끄는 군상은 한지의 하얀 바탕을 그대로 드러내며 마치 실루엣처럼 처리됐다. 송 교수는 “하얀 바탕으로 처리된 군상은 주인공인 꽃상여를 부각하기 위한 조연이면서 동시에 화면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보이지 않는 주연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죽음’이 드러내는 정서는 ‘슬픔’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죽음을 표현한 그림은 어둡고 칙칙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황 작가의 그림은 밝고 산뜻하다. 송 교수는 “황 작가가 죽음을 다른 세상으로 가는 축제로 본 것 같다”며 “환하고 밝은 분홍, 빨강, 노랑색을 사용해 죽음을 기쁨의 행사로 승화했다”고 해설했다.

  2.1994년 작품은 검은 배경에 푸른 타원, 색색의 직선들과 짧으면서도 시원시원한 흰 색의 굵은 선들이 그어진 모습이 눈길을 끈다. 송 교수는 이 작품을 “우주의 삼라만상을 기하학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며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사물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기본 도형으로 돼 있음을 암시했다”고 해석했다.

  초 기 작 품 들 은 사 뭇 느낌이 다르다. 1990년대 작품들이 눈을 사로잡는 색감과 큰 규모로 시선을 압도한다면, 1970년대 작품들은 일반적인 수묵화에 더 가깝다. 3.‘무제’(1979)를 살펴보면 한지 위에 일정한 번짐을 유지하며 겹치지 않게 찍힌 수많은 점이 눈에 들어온다. 송 교수는 “황 작가는 진한 먹을 섬세하면서도 강렬함이 돋보이도록 촘촘하게 찍어 한지와 조화를 이뤄냈다”며 “그림 상단의문구는 창작에 대한 작가의 의지와 확고한 다짐을 담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좀 더 걸어가다 보면 점점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한 1980년대의 작품들이 보인다. 4.1986년에 그린 작품(무제)은 짙은 녹색과 검은색, 회색이 어우러진 화면과 간간이 보이는 붉고 흰 붓 터치가 돋보인다. 형체가 없이 몇 번의 붓 터치로 이루어진 그림인가 싶어 가까이 들여다보면 세 사람과 나뭇잎, 반짝이는 듯한 금색 선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뜯어보면 여러 가지를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의 기법에 대해 송교수는 “제자들과 동료들은 황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자세히 보아 야한다’는 의미에서 ‘숨은 그림 찾기’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동양화 창작의 정석이나 다름없는 밑그림을 ‘사고를 제한하는 틀’이라고 규정해 과감히 생략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황 작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를 고안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물체에는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이 있다”며 “신비로우면서도 숨겨져 있는 미를 화폭에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전통회화가 가진 엄격한 틀을 버리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황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도 전시됐다. 1988년에 완성한 한 작품에는 다양한 색깔과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여백 없이 가득 차 있다. 그의 작품세계가 ‘색면 추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는 그림이다.

  재학 중에 황 작가의 수업을 들었다는 이은경(동양화·87년졸)씨는 “전시를 관람하니 선생님께서 수업하실 때의 모습이 상상된다”며 “제자들이 직접 기획해 이런 전시를 만들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황 작가가 재직했던 동덕여대 박물관에서도 29일(목)까지 ‘황창배 15주기 특별전’이 열려 작품 15점이 소개된다. 또한,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황창배 탈고안 된 전설’은 20일(화)까지 열려 황 작가의 대표작 ‘무제(90-4)’를 포함한 작품 11점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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