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이화학당 장명수 이사장은 ‘이사장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장 이사장은 편지에서 현재 학내에서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며 대립하고 있지만, 그런 대립은 모두 ‘이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본관에서 점거를 계속 이어나가는 학생도, 총시위에 참여한 졸업생도, 서명한 교수들도, 서명을 하지 않은 교수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화를 사랑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화를 만들고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화를 사랑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게 발현된 데에는 학내 구성원마다 이화의 가치나 비전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 아닐까.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사회학 교수는 이번 사태의 이면에 ‘효율성을 추구하는 학교와 대학 본연의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는 학생 간의 가치 충돌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이화가 지닌, 또는 마땅히 지녀야 할 가치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 이화인은 인터뷰에서 “최경희 총장이 130년간 지켜온 이화의 가치를 ‘혁신’이라는 명목 아래 망치고 있다”며 “이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본관에 간다”고 말했다. 이 학생이 말한 이화의 가치란 학문의 전당인 대학 본연의 가치를 뜻할 것이다. 어떤 학생에게는 이화란 깊이 있는 학문 탐구의 장이고, 평단사업이 그러한 가치를 훼손시킨다고 생각해 강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또 어떤 졸업생에게 이화란 따뜻한 가족 같은 울타리여서, 그런 울타리 안에 공권력 진입을 허용한 것을 용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최 총장이라고 해서 이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으로 지난 2년을 일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독단적, 비민주적 행보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안팎으로 대학사회 사정이 어려운 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이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었던 선의까지는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최 총장이 생각하는 이화의 가치가 다수의 학생들과 달랐을 테고,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 없이 ‘내 생각이 옳다’는 식의 의사결정 방식은 필연적으로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본관 점거는 풀리지 않고 대립은 제자리걸음 상태에 있다. 그러나 아직은 미약하게나마 변화의 바람이 느껴진다. 저마다 이화의 가치를 언급한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논쟁하고, 이해하면서 이화 구성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화의 가치와 비전, 방향을 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지금 같은 학내 갈등은 언제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 그래야 장 이사장의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이 사태가 이화의 발전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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