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수요일 3시, 공식적인 수강 정정기간은 마감되었지만 많은 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수강 과목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본인의 수강신청 과목이 ‘추가폐강 교과목 리스트’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폐강이 된다면 9월 9일 오후 5시까지 수강정정 마감 이후에 여석이 있는 강의를 신청해야 한다. 이번 학기 폐강 교과목 리스트를 확인하는데, 지난 학기까지 열렸으며 내가 들었던 과목들이 리스트에 있어서 확인돼서 의아했다. 과목에 대한 수요는 학기마다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지원팀에 문의해본 결과, 일반교양의 경우 폐강 기준은 30명이며 전공의 경우 10명이라고 한다. 이를 듣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들은 많은 강의들이 이번 학기의 기준으로는 ‘폐강됐을’ 강의라는 것이었다. 현재 나는 소위 ‘막학기’에 재학 중이기에 교양과 대부분의 전공을 채워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나는 현재도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며 수강신청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학습권 침해에 해당한다. 물론 대학가에서 전체적으로 긴축재정을 위해 폐강 기준 인원을 낮추고, 강사 채용보다는 교수 한명 당 강의 시수를 늘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이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던 가장 큰 이유는 사회의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따르기 보다는 진리의 상아탑으로써 ‘학문’을 중시하는 학풍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선 열리지 않는 많은 강의가 제공되고 다른 학교에선 ‘비인기 전공’ 등으로 매도되며 통폐합이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전공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이화에서는 제공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20명 내외의 학생들과 교양수업을 들으며 평소에 잘 만나지 못하는 체육, 무용, 음악, 간호학, 공학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교류하고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다.

  물론 100명, 심하게는 200명이 넘게 듣는 인기 있는 교양 강의도 많이 있다. 하지만 소수와 함께 듣는 강의를 선호하는 학생들도 많다. 예를 들어 ‘명작명문읽기와쓰기’ 강의의 경우 수강정원은 10명 내외로 적은 편이지만 활발한 토론과 글쓰기 실력 향상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꼭 들어야 하는 강의’ 등으로 꼽혀 왔다. 과거에 이 강의는 절대평가로 처리돼 정원이 꽉 찼던 강의지만, 현재는 상대평가로 바뀐 데다 폐강 기준 강화로 인해 폐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양 과목의 학습권에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학기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강의인 ‘사회복지개론’ 역시 높은 폐강 기준인원 때문에 과사무실에서 수강을 독려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으며,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생들은 직접 같이 들어줄 학생을 찾아다녀야만 했다.

  졸업을 앞두고 수강했던 과목들을 회상해봤을 때, 이화의 많은 강의에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소수강의였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치열한 관문과 주입식 교육을 거쳐 상아탑에 들어섰을 때에가졌던 기대는 ‘대학수업은 무언가 다를 것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강
의에서 교수님들의 소통과, 똑똑한 학우들과의 토론, 그리고 발표에 대한 지적과 피드백 등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있었다.

  대학 재정을 위한 다양한 ‘절약’의 방법 중 하나가 수업 폐강이라니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곧 대학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절약의 방법 중에서 최후에 고려돼야하며, 동시에 최우선으로 보호받아야 할 것은 바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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