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본인 제공

  올해 창립 130년을 맞아 이화의 역사를 축하하는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인도박물관의 김양식(영문·54년졸) 관장이다. 김 관장은 본교 입학 후 바로 6·25전쟁을 겪어 부산에서 임시로 설립된 학교에서 3년간 수업을 들었다. 약 60여 년 전 6·25를 겪었던 격동기의 이화 역사를 들어보기 위해 김 관장을 25일 인도박물관에서 만나 당시 이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관장은 창립 130년을 맞은 본교에 축시를 보냈다. 그는 축시를 모든 이화인에게 보내는 축하의 꽃다발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의 축시는 창립 130년의 개교기념시를 남겨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만들어졌다. “축시에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이화의 역사와 줄기를 응축해서 전달하고 싶었어요. 수필이 아닌 짧은 시로 간결하게 이를 표현하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죠. 그만큼 축시가 길이 남아도 부끄럽지 않게 마음을 다해 썼어요.”

  김 관장이 보여준 대학 시절 사진에는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본관과 대강당이 눈에 띄었다. 김 관장은 사진을 보며 이화의 1950년을 추억했다. “그 당시 이화 캠퍼스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지금 캠퍼스를 보면 운동장도 없고 건물로 가득한데, 그 당시에는 건물보다 자연이 많았죠. 학교 곳곳이 꽃밭이고 숲이어서 정말 아름다운 숲 속의 학교였던 기억이 나요. 제가 졸업한 영문과는 지금 캠퍼스에 있는 본관에서 주로 강의가 있어 자랑스러웠죠. 운동장에서 같은 과 친구들끼리 체육수업을 듣기도 했었죠.”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언어와 시를 좋아하던 김 관장은 문학도를 꿈꾸며 이화에 진학했다. 그 당시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여학생 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대학의 수도 적었다. 많은 여학생에게 이화는 로망이기도 했다. “영문과를 선택한 이유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워서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19세기 낭만파 시를 많이 배우고 읽다보니 영시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일찍이 시를 쓰기 시작했고 특히 정지용 시인이 본교에서 영시를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영문과를 선택했어요.”

  김 관장은 신촌 캠퍼스에서 수업을 얼마 듣지 못했다. 4월에 입학하고 두 달 만에 6·25전쟁이 발발했고 1·4후퇴 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본교 학생들의 학구열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학생과 선생들은 전시에도 불구하고 부산에 임시학교를 지어 배움을 이어나갔다. “1951년 가을쯤 임시학교를 짓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전 부산 임시학교에서만 대학을 3년 다녔죠. 우리 학교는 다른 대학에 비해 빨리 임시학교를 지었어요. 임시학교는 당시 경남도청 뒷산 언덕에 지어졌는데, 일단 대충 텐트를 치고 바닥에는 가마니를 깔아 그 위에 앉아서 공부했어요. 칠판 하나를 걸어놓고 책상과 의자도 없어 무릎에 노트를 놓고 수업을 들었죠. 차츰 긴 의자와 책상도 생겨 점점 피난학교의 모습을 갖춰갔어요.” 

  힘든 피난 생활이었지만, 동기와 스승이 함께였기 때문에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서울에서 이화에 입학할 당시 동기가 63명이었지만, 부산에서는 23명 정도만 같이 수업을 들었어요. 때론 전차를 타고 해운대 바닷가에서 영문과 친구들과 바위에 앉아 노래도 부르다가, 피난생활의 슬픔으로 눈물도 흘리면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지냈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스승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부산으로 내려오신 교수님들은 그 수가 얼마 안됐지만, 강의는 이어나갔어요. 전쟁 중이라 교수님의 수도 줄었어요. 남은 교수님들께서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셨죠. 당시 총장이던 김활란 교수님께서도 영문과 반에서 영시 강의를 하셨고, 모윤숙 교수님께서도 영시를 가르쳐주셨어요.” 

  김 관장은 부산에서의 3년이 그의 삶을 강하게 만들어 줬다고 말한다. “전쟁을 겪어보니 이제 앞으로 뭐든지 해낼 수 있고, 뭐든 견딜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또, 소학교 시절 일제강점기도 겪고, 중학교 때 해방을 겪은 제게 역사의식을 갖게 해준 것 같아요.”

  끝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시간을 귀하게 여겨 스스로의 가치를 위해 꾸준히 탐구할 것을 당부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 학업에 열중해 언제 어디서나 자신 있게 국제사회의 선봉으로 나갈 수 있는 이화인이 돼 영광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祝  詩
-梨花大學 創立 130周年에

詩·初荑 金良植
(’54년 영문과 졸업)

바로 130년 전,
높은 智德을 겸비한 先人 있어 고귀한 뜻을 모아
이 나라 女性敎育의 先鋒, 梨花學堂을 세우셨다

지난 130년의 길고도 험난했던 近代史上,
한때는 우리 祖國의 存亡의 기로에서
세찬 비바람에 마구 흔들려 꽃도 열매도 맺지 못하고
울부짖지 조차 못했던 암흑의 긴 세월을
先賢들은 목숨 바쳐 지혜와 용기로 견디어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야만적 통치 하에서
겨우 쟁취한 해방과 독립의 감격도 잠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야만적 남침 등-
우리의 조국 땅은 산산이 깨지고 무너지고 불탔다

허나 우리는 모두 뜨거운 一念으로 국가재건에 나섰고
굳건한 弘益의 높은 정신과 슬기로
우리 梨花學堂의 교문도 다시 활짝 열렸다
다시 한 번 이끼 짙푸르고 탄탄한 반석 위에 
맑고 향기 가득 여울지는 배움터가 마련되었다

거기, 이 나라 女性敎育의 비옥한 텃밭이 전개되고
거기, 이 나라 女性敎育의 푸르른 하늘이 눈부셨다

보라, 만화방창 향기로운 梨花의 꽃동산을-
사랑과 믿음과 지혜로 피어난 눈부신 人材들을-
그들은 이 나라의 빛이며 희망이며 未來임을-

오-, 참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梨花여
참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梨花인들이여
찬란히 빛나거라 그리고 영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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