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남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크게 화제가 됐다. 살인자는 공용화장실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범죄대상을 물색했다. 남자들은 모두 지나치고 혼자 들어온 여자를 죽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들은 말한다. “이것은 묻지마살인이 아닌 여성혐오살인이다.” 이것은 ‘현상’이 아닌 ‘근본’의 문제인 것이다. 이 사건은 여성이 살인당한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피해여성이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었던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모든 범죄의 시작점을 끊는 사람은 가해자다. 그런데 피해여성은 언론에서 더 주목되고 있으며, 가해남성의 처사를 분석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 즉 피해가 나기 전에 가해자의 탄생을 막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내버려둔 채 피해자를 줄이려는 피상적이고 허술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국가이자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다. 국민들은 이 시스템의 부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그 시스템에 종속돼있다. 국가가 하나의 범죄사건이라면 이 사건의 내부에 속하는 사람들은 전부 피해자며 가해자이자 목격자다. 내가 여성으로서 여성혐오사회의 피해자이자, 그 가치를 물려받아 은연중에 다른 여성, 혹은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있는 가해자이며 이 여성혐오가 시간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지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목격자인 것처럼. 남성도 그렇다. 그들은 여성혐오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물려받고 실천한 가해자들이며, 그 사상에 노예처럼 종속되어버린 피해자이기도 하고 이 모든 과정을 자신의 삶 속에서 지켜본 목격자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피해자-가해자-목격자에서 탈출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특정 개인의 문제, ‘현상’으로 미루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방치하는 것은 책임감 없는 무지의 행동이다. 적어도 우리는 모든 사건들을 쥐고 흔드는 우리 사회의 ‘근본’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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