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순옥 교수, 숨 가쁜 현대인에게 숨 돌릴 여유를 선물하다
우순옥 교수, 숨 가쁜 현대인에게 숨 돌릴 여유를 선물하다
  • 장운경 기자
  • 승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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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흐름이 묻어있는 '시간의 그림'(1983/2016)
▲ 모두가 여행자라는 작가의 생각이 담긴 'Empty Space-우리는 모두 여행자'(2007)
▲ '시간의 그림'을 감싸고 있던 천, '무제'(2016)
▲ 하늘을 바라보는 시점의 'Silence, Please'(2014)
▲ 본질을 불러 의미를 상기하게 되는 'Microhome-꽃!'(2006)
▲ 인생의 여정을 보여주는 '무위의 풍경' (2014)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무위예찬’,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전시회가 6월12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진행 중이다. ‘무위예찬’ 전시회는 본교 조형예술학부장으로 재직 중인 우순옥 교수(서양화과)의 개인전이다. 우 교수는 고대 중국 노자 사상의 무위(無爲)를 자신만의 관조적 세계관과 예술관으로 재해석해 작품에 드러냈다. 드로잉, 영상, 텍스트, 설치 작품 등 12점은 과잉과 성과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본질에 관해 질문한다. 본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룰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엿보기 위해 17일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정면에 영상 작품인 ‘무위의 풍경’(2014)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독일 쾰른 근처에 위치한 브루더 클라우스 경당(Bruder-Klaus-Kapelle)로 가는 여정이 영상으로 담겨 있다. 브루더 클라우스 경당은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건축한 천주교 기도실이다. 우 교수는 그 곳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이 마치 인생의 굴곡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약 1시간의 여정을 10배로 늘려 인생의 긴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목적지로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너무 느려 정지 상태로 보인다. 당장은 길게 느끼지만 돌이켜 보면 찰나 같은 우리의 인생을 표현한 것이다. ‘무위’를 오랜 시간의 흐름으로 느낄 수 있는 기다림과 고요함으로 재해석한 작가의 철학이 나타나있다.


작품의 왼쪽을 보면 큰 스크린이 펼쳐진 어두운 방이 있다. 이 큰 스크린은 ‘Microhome - 꽃!’(2006)이다. 전남 영암 구림마을의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을 촬영한 영상이 재생되고 어디선가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품 제목에서 ‘꽃!’은 김춘수 시인의 ‘꽃’에 영감을 얻었다. 영상은 본질을 불러 의미를 상기하는 것을 테마로 학생들을 세우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재생된다. 가족, 사랑 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학생들은 대답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대상에 대한 추억을 되살린다. 화면 속 강 건너 학생들은 보이지 않아 ‘무위’의 상태지만,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관람객들도 그 대상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방에서 나와 좀 더 넓은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천장에 난 구멍으로 보이는 하늘을 촬영한 영상 작품이 있다. 바로 ‘Silence, Please’(2014)다. 이전 작품인 ‘무위의 풍경’에서 경당에 도착한 후 경당 내부에서 천장을 바라보는 앵글이다. 4분34초 동안 관조적인 태도로 하늘을 바라만 보는 이 영상은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1952)라는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음악회를 연 존 케이지는 청중 앞에서 4분33초 동안 앞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악기로 연주하는 것만이 음악이 아니라 주변의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의도를 담았다. 우 교수도 이에 착안해 주변의 소리와 하늘에만 집중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관조하며 사색하는 무위사상을 나타냈다.


그 자리에서 뒤돌면 어둡게 채색된 주름진 유화 캔버스가 벽면에 걸려있다. 우 교수가 1983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약 30년간 독일에 있는 작업실에 깨끗한 천으로 감겨 보관됐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다시 독일에 돌아가 이 작품을 꺼냈고, 오래 돼 주름이 진 캔버스를 보게 됐다. 인간도 나이가 들면 주름이 지듯이 작품에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생각한 그는 캔버스 그대로 전시했다. 원작에 또 다른 의미를 덧씌웠기 때문에 작품명을 원제인 ‘침묵의 바다’에서 ‘시간의 그림’(1983/2016)으로 수정했다. 


또한, 왼쪽 벽면에는 ‘시간의 그림’을 보관하기 위해 감쌌던 두 장의 천인 ‘무제’(2016)가 걸려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감싸고 있듯이 천이 그림을 소중히 감싸고 있었다고 바라본 우 교수는 천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우 교수는 주름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든 얼룩 주위에 금실 자수를 놓았다. 우 교수는 얼룩 역시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흔적이라고 생각해 지우지 않고 주목 받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성과주의 중심인 현대사회에서 얼룩은 주로 결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 교수는 얼룩에 값비싼 물질인 금을 둘러 관람객에게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한다.  


맞은 편 전시장 바닥에는 여러 화분에 둘러싸인 브라운관이 있다. 2007년 작 ‘Empty Space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는 영상 작품이다. 길거리에 있는 한 건물 유리창에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는 문구를 붙이는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다. 우 교수는 그 앞을 오가는 사람과 자동차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이나 공간을 여행하는 여행자라고 생각했다. 브라운관의 받침대는 움직일 수 있는 바퀴가 달려있어 여행이라는 의미를 나타냈다. 주위에 놓인 식물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모티프다. 식물이 정적이지만 물을 주고 가꾸면 피어나듯이 기억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르면 살아난다는 것을 표현했다.


국제갤러리 대외협력팀 천지혜 담당자는 “우 작가는 이번 전시로 사라진 장소와 기억, 부재하는 대상을 소환했다”며 “관객에게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