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게 되면 많이 듣게 되는 말로 꼽히는 문장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낯설고, 부끄럽고, 수줍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수줍어하지 마’라는 말을 듣던 한국인들은 이제 사회에서 ‘내향성’을 용인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참여점수’, ‘발표점수’ 등과 같이 수업에서 활동적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면 점수를 준다. 필자가 지금 듣는 한 전공 수업에서도 교수님이 손을 들고 발표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매일 체크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외향적인 사람들이 대인관계에 원만하고, 유쾌하고, 사교적이기 때문에 외향적 인재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EBS 다큐프라임에서 문화권에 따른 성격유형 조사결과, 우리나라는 ‘약한 내향형’ 국가로 분류됐다. 내향형 국가에서 내향적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은 적극적이고 활달하며, 사교적이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조용하고 답답하며, 소극적이고 비사교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견은 사전에도 나타난다. ‘외향성’을 설명에는 내용에는 명랑한, 활발한, 적극적인 등의 긍정적인 단어로 가득하다. 하지만 ‘내향성’의 정의에는 결단을 주저하는, 실행력이 부족한, 회의적인 등의 부정적인 단어가 나열돼 있다. 

  하지만 외향성과 내향성은 개인의 기질에 있어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느냐’의 차이다. 외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에너지를 얻으면 외향적이고, 혼자 있는 상태에서 쉼을 통해 얻으면 내향적이라고 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비사교적인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상태에서 그들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에너지를 얻을 뿐이다. 

  사회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성격을 바꾸고 조금 외향적일 필요가 있다고 권한다. 내향적인 성격으로는 사회생활을 못할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향적인 성격에 장점이 있듯, 내향적인 성격의 역시 많은 장점이 있다.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집중력이 높고, 끈기가 있으며 섬세하고 진중하다. 또한, 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의 사색을 통해 창의성이나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이 모두 소극적이고 비사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단지 그 후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사실 필자도 외향적이기보다는 내향적인 사람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내향적이라고 친구가 없지도 않고, 동아리 생활이나 학보 생활도 열심히 잘 해내고 있다. 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내향적 성향 덕분에 나만의 시간에 독서를 하거나 원하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내향적인 성격은 단점도, 약점도 아니다. 그래서 개인의 내향성을 바꿀 필요가 없으며, 바꾸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Quiet」의 저자 수전 케인은 “오늘날 우리는 한쪽으로만 치우친 편향된 성격 유형에만 점수를 준다. 사람들은 훌륭해지려면 대담해야 하고, 행복해지려면 사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의 1/3 이상은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텐데, ‘내향성은 부정적이다’라는 편견에 휩싸여 모두에 똑같은 외향적인 성향을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는 편견을 버리고 각자의 성향을 존중해 장점을 수용해주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