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년이면 현생인류 사라질 것”이라는 말로 화제를 모은 사람이 있다. 바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이다. 나는 지난달 28일 7시부터 2시간 동안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이 석학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막바지에 우리나라 교수진들은 유발 하라리에게 인공지능(AI)시대를 맞아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물었다. 그는 우리가 현재 배우는 교육방식을 지적하며 학생들이 용기를 가지고 “나는 모릅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답했다.

  이 부분을 듣자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학에 와서 지식을 얻는다는 점에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당당히 모른다고 외칠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역설로 느껴졌다.

  유발 하라리는 학문과 종교가 분할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종교와 달리 학문이나 과학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가 의식을 가질지 아닐지 모를 때는 그저 ‘모름’을 인정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지식을 대할 때 종교처럼 맹신하며 매달린 게 아닌가 한다.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항상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왔다. 정답을 모르면 우리는 침묵한다. 무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교육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알파고 열풍이 불자 우리나라는 바로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조선일보 사설에 따르면, 미래부는 AI 전담팀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수시로 관련 인사들을 채근했다. 준비된 것이 없는 상태로 급하게 국민들이 원하는 답을 보여주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모른다고 침묵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무지의 사태를 빠르게 벗어나고자 정답을 끼워  맞추는 것도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지를 받아들이는 솔직함과 여유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