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크라이나 태생 극작가 미하일 불가고프(Mikhail Afanas’evich Bulgakov)는 장편「백위군」에서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라고 말했다.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슬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로 가장 먼 극단에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 우울과 사랑은 사실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감정의 스펙트럼 안에 공존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에서 우울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감정이다. 즉, 우울은 우리 삶의 일부다. 본지는 7일 보건의 날을 맞아 절망과 생명력의 두 얼굴을 지닌 우울증을 살펴본다.

  우울증을 겪는 본교생 ㄱ씨는 항우울제를 5개월째 복용하며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화목한 가정과 원만한 대인관계 속에서 사랑받으며 살아온 ㄱ씨는 어느날 갑자기 공황상태를 경험했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던 도중 귀가 먹먹해지고 온몸이 굳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극심한 무기력감과 불안증세로 일상생활이 힘들게 되자 ㄱ씨는 병원을 찾았다. ㄱ씨는 “우울감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우울증에 처음엔 당황스러운 마음이 앞섰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4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의 우울 장애 유병률은 6.7%로 나타났다. 우울증은 자살의 대표적 원인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7일 보건의날을 맞아 우울증을 다룬 「한낮의 우울」, 「우울의 심리학」, 「행복의 역습」을 통해 우울증의 근원과 증상, 치료법을 살펴보고 극복에 대한 희망을 엿본다.

△「한낮의 우울」 삶은 슬픔을 내포한다

  ㄱ씨는 “우울증이 자연스러운 감정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불안감을 덜고 치료에 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심연의 공포처럼 느껴지는 우울증은 사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감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ㄱ씨에게 우울증은 자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낮의 우울」은 우울증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사실 우울증은 인류의 역사와도 함께 해왔다. 인간이 자의식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 이래 계속 존재해온 우울은 진화의 산물이다. 인류가 수렵채집시대에 사냥의 위험에 직면하거나 집단 간의 경쟁에서 패배하는 일은 흔했다. 그때 고통과 슬픔을 학습한 덕분에 인류는 무모한 도전에 따른 생명의 손실을 예방할 수 있었다. 우울은 위험 상황을 회피하는 뇌의 방어 기제인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에 대해 ‘안다’고 여기는 생각들을 경계한다. 몇가지 증상들로 지표를 만들어 정신장애를 판단짓는 일, 우울증이 단일한 약효로 치료될 수 있는 병으로 여기는 일, 뇌의 화학 작용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한다는 의학적 관점 등이 그 예다. 우리는 무엇이 우울증을 유발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우울증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도 모르며 왜 특정한 치료들이 우울증에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울증을 인정하고 그 실체를 그대로 보고 극복하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울증이 앗아간 추억들을 찾아내어 미래에 투영해야 한다. 용감해지고, 강해지고, 착실히 약을 먹어야 한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더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우울증을 싫어하고 우울증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엄습하는 끔찍한 생각들을 차단해야 한다.”  (「한낮의 우울」 p.46)

  저자는 대부분 우울증의 증상과 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우울증으로 인한 중독, 자살에 대해 분석한다. 또 우울증의 정치·사회·진화론적인 근원을 캐내기도 한다. 끝으로 사례를 제공한 우울증 환자들이 절망을 딛고 회복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주며 희망을 전달한다. 삶이 거의 붕괴돼 도저히 치유될 것 같지 않던 그들이 두 발로 당당하게 서는 사례들이다.

  우울증을 안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사실 우울증을 통해 배움을 얻는 사람들은 우울증 체험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고찰함으로써 특별한 철학적 깊이를 얻을 수 있다. 즐거움과 사랑 이면에 있는 슬픔과 고독으로 이뤄진 삶의 다양한 면모를 보기도 한다.

△「우울의 심리학」… 우울증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

  「한낮의 우울」이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인 우울증의 실체를 드러내려 했다면 「우울의 심리학」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방법론을 다룬다. 책의 주제는 크게 두가지다. 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사실과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에 관한 것이다. 나아가 책은 우울증을 겪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들을 말한다. 관계 회복과 우정의 가치, 삶의 소중한 것들, 행복의 시작점 등이다. 

  저자는 우울증이 안겨주는 절망에 공감하면서도 치유법을 제시하며 환자들이 변화를 시도할 용기를 북돋아준다. 자신을 괴롭히는 우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 따라서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모색하는 것,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자신이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저자는 우울증 치료를 암벽 등반에 비유하며 레밍(lemming, 스칸디나비아의 툰드라에 서식하는 보라색 털을 지닌 작은 몸집의 쥐)의 사례를 실어 강인한 생명력의 가치를 전한다. 속설상 레밍은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동물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레밍이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절벽을 넘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몇 년에 한 번씩 개체수 증가가 일어나 먹이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사실은 생존을 위한 용감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을 바로 레밍에 비유할 수 있다. 우울증에 시름하는 사람들의 경우, 인생이 너무나 비참해서 죽음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안도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물론 죽음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기를 원하거나, 이미 뛰어내려 본 경험이 있거나, 절벽 밑바닥에 쪼그려 앉은 사람들을 위해 썼다.”  (「우울의 심리학」 p.37)

  책 전반에서 우울증의 해결책으로 거듭 제시되는 것은 일지를 쓰는 일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병으로 인해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민낯을 보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울증 치료에 필수적이다. 일상 속 긍정적인 자극을 상기시키기 위해 긍정적인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밖에도 평화로운 삶의 영위, 가족과 더 많은 시간 공유하기, 타인 사랑하기, 인류와 지구의 환경을 보전하는 데 우리의 시간과 힘 쏟기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로 제시된다. 

△「행복의 역습」 만들어진 행복을 경계하라

  「행복의 역습」은 우울이 인간의 태생적인 동반자라는 것에는 동의하나 현대의 우울증은 행복 강박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현대인은 임상적으로 심각한 우울장애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슬픔에 대해서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슬픔과 불행을 질병으로 정의하면서 정신작용약물 처방이 급격히 증가했고 환자 수 또한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작가는 ‘인공행복’ 개념을 제시해 우울증을 둘러싼 행태를 비판한다. 행복한 삶에 기반한 것이 아닌, 약물치료 등으로 얻는 행복감이 인공행복이다. 인공행복은 삶을 부정하는 힘을 제공해 비참한 삶도 비참하게 여기지 않게 만들어준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는 실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기분만을 유쾌하게 유지할 수 있다. 

  작가는 특히 정신작용약물의 남용에 문제를 제기한다. 현대의학은 일시적인 슬픔과 걱정을 치료하기 위해 대체요법이나 운동을 하기보다 약물처방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처음에는 일상적인 심리적 고통을 덜고자 하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많은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다. 현대의학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인공행복을 고안해냄으로써 인류가 겪는 불행의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는 인공행복을 둘러싼 의료계의 급격한 변화를 역사적으로 짚고, 인공행복이 어떤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설명한다. 또한 불행감과 싸우기 위해 약물과 같은 외적인 도움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비판한다. 

  인공행복은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을 제거한다.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행동 자체를 위해 선택하도록 하기도 한다. 인공행복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현재 상황이 최악일지라도 현재에 안주하게 한다. 우리는 불행을 삶과 분리해서 사고하는 태도를 갖게 되면서 항상 인공행복을 추구하려 드는 것이다.

  삶의 부정적 이면을 차단하는 인공행복이 가져오는 결과는 참담하다. 일반적으로 불행은 더 발전하기 위한 동기가 되곤 하며 이는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위한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불행감에 ‘인위적인 행복감’을 덮어씌우는 것은 그들의 삶을 더 이상 반전의 동기를 상실한 무덤덤한 안락감으로 채워버릴 수도 있다. 이에 작가는 “불행은 병이다”라고 여기는 개념에 경종을 울리고, 우울증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자세를 요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여기에는 신경전달물질이나 약물, 대체의학, 강박적 운동과 같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행동을 변화시켜 나가면 된다. 이 빛나는 진리가 아마도 인공행복의 가장 큰 허점, 즉 인공행복에 관련된 모든 것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줄 수 있다.” (「행복의 역습」 p.386)

대학건강센터 상담 프로그램

  본교 대학건강센터는 15일 오전9시30분~11시30분과 26일 오후2시~4시30분 대학건강센터 건강교육실에서 4월 정신의학과 상담을 진행한다. 우울한 상태가 오래가거나, 강박감을 많이 느끼고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고민하는 등 마음의 문제로 상담을 원하는 본교생 및 대학원생은 온라인 신청을 하면 된다. 상담은 1대1로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수인 교수와 김의정 교수가 진행한다. 상담내용은 비공개이며, 사전 예약이 필수다. 예약을 원하는 학생은 대학건강센터 홈페이지(euhs.ewha.ac.kr)→포털로그인→온라인예약→정신건강의학과예약→일·시 지정예약에서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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