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정치, 경제, 교육을 포함한 모든 분야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창되던 시대가 있었다. 18세기 말,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파편화된 현실 뒤에 숨겨진 진실(Wirklichkeit)에 다가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예술을 제시하며 예술을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끌어 온 것이다. 그보다 더 옛날, 약 2500년 전 공자는 음악을 통해 나 자신을 조화롭게 만들어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이상사회를 꿈꿨다. 인간과 사회 완성에 필요한 두 가지가 예절(禮)과 음악(樂)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건강한 시민의식의 성장을 동반하지 못한 초고속 경제성장은 성과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결합한 무한경쟁시대를 열었다. 경제적 풍요가 허락한 여유시간에 예술과 철학을 논하는 대신 더 좋은 스펙, 더 많은 재산을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음악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음악의 입지는 나아지는 것이 없어, 대중음악은 완전히 시장의 논리에 종속되어 가수와 음악의 상품성과 수익성이 최우선이 되었다. 노래 그 자체로 평가 하기 보다 선정적인 춤, 아름다운 외모를 더 주목 하는 대중매체로 인해 가수가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는 비인간적인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클래식음악은 충분한 공적인 교육의 결핍과 좁은 시장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진입장벽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클래식 인구의 고령화는 한국음악계의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여러 대학들이 음대를 축소 또는 통폐합하고 있다. 순수음악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설 자리가 위태로워진 것이다.

  지난 가을, 2학년을 보내던 내게 음악이 필요한 것 같지 않은 사회 속에서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혼돈의 시간이 찾아왔었다. 혼란의 단초는 여름방학 때 방문한 미얀마와 오스트리아에서의 경험이었다. 폐차 직전의 낡은 한국버스가 매연을 내뿜으며 흙 길을 달리는 미얀마의 거리와 그림같이 예쁘게 정돈된 오스트리아의 골목길은 나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균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두 국가의 극명한 경제적 차이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음악가가 아닌 행정가나 경영인이 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처럼 여겨졌다. 물질과 권력에 좌우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음악의 존재목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공부가 헛된 것일 까봐, 이 땅에서 이웃과 사회에 기여한 바가 하나도 없는 삶을 살까봐 두려워졌다. 계속 음악을 공부할 근거를 찾아내야만 했다.

  허무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를 건져낸 것은 결국 다시 그 두 곳에서의 기억이었다. 서투른 미얀마어로 찬송가를 부르는 이방인을 바라보던 미얀마인의 까만 눈동자들, 그리고 작은 성당에서 콰르텟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노부인의 얼굴, 이는 다시 음악을 하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세상을 뒤집을 만한 천부적인 재능도 없고, 걱정 없이 박사까지 공부할 만큼 여유로운 환경도 아니지만 다시 이를 악물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슴이 벅차 오른 순간들이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무형의 소리는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지기가 쉽다. 그러나 음악은 인간 영혼의 심연을 건드릴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서 지금까지 함께해왔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공들여온 자신의 전공에 나와 같은 이유로 회의를 느끼고 있는 음악인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계속 음악 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충분히 가치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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