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방학이 되면 아빠가 항상 집에 계셨고 내가 개학을 하면 아빠도 같이 등교를 하셨다. 여기서 눈치챘겠지만, 아빠의 직업은 교사다. 우습게도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처럼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이 방학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방학은커녕 업무시간 외에 야근까지 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현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친언니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긴 방학이란 닿을 수 없는 오아시스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도 좀체 가질 수 없었던 긴 방학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바로 ‘퇴직’이다.

  2008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에서의 퇴직 연령이 53세였지만, 2015년에는 만 49세로 퇴직 시기가 앞당겨졌다. 특히 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를 하면서 경제활동과 가족 문제 등으로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우울증 환자 수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던 이들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시기에 은퇴해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나 역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빠의 머리에도 흰머리가 수북해졌다. 이제 아빠도 6~7년 뒤에는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한다. 그간 아빠가 보냈던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아닌 인생의 중년에서 노년기라는 개학 없는 방학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아직 부모님들의 긴 방학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식의 입장에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걱정은 뒤로 미루고 이들의 기나긴 방학을 응원할 생각이다. 그동안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온 부모님들에게 방학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껏 여름방학, 겨울방학이라는 휴식을 자연스럽게 즐겼던 것처럼 이들이 긴 방학을 맞이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이를 이상하게 느끼거나 안타깝게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방학을 하면 학교에 가는 대신 부모님의 품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해 이들의 기나긴 방학을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줄 차례이다.

  몇 년 전부터 필자의 아빠는 커피에 매료되어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분야에 관심 있게 파고드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불편함을 토로하는 대신, 아빠표 커피를 마셔보며 계속 조언을 해주고 있다. 실제로 은퇴자들 가운데 요리, 원예 등과 같은 취미생활 분야에 흥미를 느끼거나 그동안 사회에서 배웠던 것들을 재능 기부의 형태로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방학을 맞이하는 부모님들의 태도나 방식은 각자 다양하겠지만, 그 부모님들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개학이 없는 긴 여정의 방학을 맞이하는 부모님들을 위해서 따뜻한 말 한마디와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방학이 충분히 빛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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