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마르지 않는 눈물, 증오비 속 진실을 파헤치다
베트남의 마르지 않는 눈물, 증오비 속 진실을 파헤치다
  • 김송이 기자
  • 승인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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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28일 타결된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외교장관 합의(한일합의)와 함께 전시 성폭력은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동안 전국 곳곳에는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기 위한 ‘소녀상’이 세워져 왔다. 여러 시민단체는 연일 한일합의 무효를 외치며 시위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전에도, 지금도 외면 받는 또 다른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다. 바로 베트남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이다.   

△한국에 소녀상이 있다면, 베트남엔 증오비가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의 적국은 미국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한국군은 미군보다 더 큰 증오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원거리 공격을 주로 행한 미군과 달리 한국군은 직접 마을 사람들과 부딪히는 작전을 많이 수행했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그들에게 잔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를 증명하듯 베트남 꽝아이(Quang Ngai) 성 반호아(Binh Hoa) 마을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희생자의 숫자, 민간인 학살내용 등이 적혀있다. 증오비에는 한국군이 학살한 민간인의 이름도 함께 적혀있는데, 여성과 아이들이 주를 이뤘다. 

  한국군이 학살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규모는 공식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상태다. 한국군 증오비에는 422명, 112명, 37명, 380명이란 희생자 숫자가 적혀있다. 마을 전체가 몰살돼 이름과 숫자를 알 수 없어 텅 빈 상태로 남아있는 비석도 있다. 구체적인 학살내용은 훼손돼 있어 내용을 식별할 수 없고, 마을 사람들의 증언으로만 그 심각성을 짐작할 뿐이다.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의 피해 복구를 위한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일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비기금을 조성하고, 수차례 베트남을 찾아 피해여성들을 만나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정대협 홈페이지에 개시된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의 내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바이할머니는 16살쯤에 한국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사람 중 유일한 젊은 여성이 바이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세 명의 한국군에게 차례로 성폭행을 당하고, 네 번째 한국군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 거의 죽을 지경이 돼서야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일본군 ‘위안부’와 베트남 한국군 성폭행

  한국-베트남 시민연대(한-베 시민연대) 황점순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와 베트남 한국군 성폭행 범죄는 범죄의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주도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장기간 걸쳐 저지른 범죄지만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 성폭행 범죄는 단기간, 개인에 의해 이뤄진 범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피해 규모는 적지 않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인과 베트남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은 ‘라이따이한(Lai Daihan)’으로 불리며, 일반 평민보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 1500명, 현지 활동가들이 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그 피해자들의 정확한 수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끝나지 않는 고통과 사죄하지 않는 우리

  황 대표에 따르면, 베트남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전쟁 이후 평범한 생활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피해 여성 대부분은 결혼하지 못하고 경제적 형편도 남들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다. 피해 여성 대부분,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과거 아픔을 누구에게도 선뜻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 했다.

  전쟁의 아픔은 베트남 여성뿐만 아니라 한국군 2세들에게로 이어졌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국군 2세들도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적의 자식들’로 여겨져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자랐다. 황 대표는 “베트남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졸업 후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하고, 일당을 받고 일하거나 길거리에서 복권을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전시 성폭력과 무자비한 대학살을 저질렀지만, 한국 정부는 별다른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해 “마음으로부터의 빚이 있다”라고 말한 정도가 한국 정부 입장의 전부다. 황 대표는 “미군은 베트남 전쟁 중 남은 2세들을 본국으로 데려갔지만, 한국군은 베트남에 남겨둔 채 돌아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지원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 피해자를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후원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은 황 대표가 있는 한-베 시민연대와 정대협 정도가 대표적인 베트남 민간 후원 단체다. 현재 한-베 시민연대는 한국군에 의한 집단 학살이 있었던 피해 마을의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 대학교 1곳 등을 후원하고 있다. 정대협은 나비기금을 설립해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들의 생활비 지원과 한국군 2~3세의 자립을 돕고 있다.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베트남 피에타’상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기 위해 ‘평화의 소녀상’이 만들어졌듯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을 위한 동상이 작년에 만들어졌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부부인 김운성·김서경 작가가 ‘베트남 피에타’ 상을 만든 것이다. 피에타 상은 그들이 베트남 평화기행에서 겪은 경험에서 만들어졌다.

  김 부부 작가는 한국군 학살지인 다낭에서 생존자의 증언을 듣고, 위령비와 증오비를 본 충격으로 피에타상을 만들었다. 증오비에 적힌 학살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 노인이었고 한 살이 안 된 무명의 아기들도 있었다. 이를 보고 김 부부 작가는 이 아이들을 위해 사죄와 반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두 작가가 구체적으로 상의 모습을 구상하게 된 것은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개관한 전쟁증적박물관에서 아이 여럿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는 엄마의 사진을 본 이후였다. 김 부부 작가는 “사진 속에서 한 아이가 눈을 감지 못한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며 “사진 속 아이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담아 엄마의 품에서 포근히 잠든 아기의 형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상의 이름은 ‘베트남 피에타.’ 베트남어로 ‘Lai Ru Cuoi Cung’이며 ‘마지막 자장가’라는 뜻을 지닌다. 

  황 대표와 김 부부 작가는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한국군으로 인한 피해를 우리가 인정하고 사과하고 또 배상해야 한다”며 “이는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 부부 작가도 “우리가 베트남에 준 피해를 역사에 제대로 기술해 미래 아이들에게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