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오십’은 25세를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단어일 것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곧 반 오십이라니”라고 한탄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이와 관련해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는 ‘철이 안 들었다’는 것이다. 흔히 ‘나잇값을 못한다’는 사람들에게 “철없게 왜 그런 행동을 하냐”며 핀잔을 준다. 필자가 주말에 집에서 좋아하는 아이돌의 컴백을 맞아 음악 방송을 보고 있자, 아빠가 “넌 나이가 몇인데 철없게 그런 걸 보니”라고 하셨다. 20대가 15세 이상 관람가인 음악 방송을 보는 것이 왜 철없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상 속 사소한 부분에서 ‘나이’에 제약을 받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동안’이라는 말은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고, ‘신세대’는 연령대보다 젊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곳곳에 나이를 비교하는 속내가 들어가 있다. 말뿐만이 아니다. 이미 나이에 대한 편견은 우리의 사고 깊숙이 존재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탑골공원 패스트푸드점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이 참 어색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패스트푸드점은 젊은 세대만을 위한 향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혀 패스트푸드점에 있는 노인을 어색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는 연연하지 않는다. 함부로 나이를 묻지도 않을뿐더러, ‘그 나이에는 이래야 해’라는 고정관념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가죽 바지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고, 할머니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또한, 외국에서는 인기 팝 스타의 콘서트에 할머니, 할아버지 팬이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줌마 팬’이라는 단어는 국내 배우 배용준의 일본 주부 팬들의 모습을 보고 등장했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자유롭게, 그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작년 OECD가 발표한 한국 평균수명은 82.5세라고 한다. 해마다 높아져 가는 평균수명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더 많아졌음을 뜻한다. 이렇게 우리가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날은 많아져만 가는데, 옛날 기준에 얽매여 ‘이 나이엔 이래야 해’라고 규정짓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날이 더 많아진 만큼,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경험해봐야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유행처럼 번지며 최근 ‘어모털족’(Amortality)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라고 한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Mortal에 부정 접미사 A를 붙여 ‘영원히 사는 사람’을 뜻한다. 물론, 불로장생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신체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얼마 전 뉴스로 외국에서 103세 할머니가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사람이 할머니의 건강을 염려해 만류했지만 할머니는 도전했고, 결국 새로운 경험을 얻었다. 최근 기사로 ‘최고령’ 타이틀을 가진 어른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최고령 대학생처럼 학업에 정진하는 어른들, 최고령 보디빌더처럼 운동에 몰두하는 어른들 등 이제 더 이상 나이는 한계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제는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며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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