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양심이 숨쉬는 전시 성폭력 박물관 WAM에 가다
일본의 양심이 숨쉬는 전시 성폭력 박물관 WAM에 가다
  • 남미래 기자
  • 승인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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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작년12월28일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합의가 타결됐다. 합의안 내용에는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을 위해 10억엔(약 97억원)을 기부하는 것과 아베 총리의 공식적인 사과가 담겨있었다.  타결 후, ‘위안부’ 합의 동원 여부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합의 타결을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이대학보사, 이화보이스(Ewha Voice), EUBS로 구성된 이화미디어센터 해외취재팀은 지난 2월10일~14일 일본 도쿄시를 찾아 위안부 문제 관련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일본인을 취재했다.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 전쟁 성폭력 관련 자료를 모아 보존·전시하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WAM)’이케다 에리코 관장이다.

 

▲ 이케다 에리코 관장

  WAM은 일본 와세다대학교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한적한 곳에 위치해있다. 일부러 학교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우익단체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체를 처음 설립했던 2005년, 당시 우익단체로부터의 협박전화나 항의가 쇄도했다. 전(前) 대표였던 故 마츠이 야요리 씨는 자택으로 협박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1~2주동안 집을 떠나있어야만 했다.

  우익단체의 협박은 전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WAM 개관 당시 일본의 우익단체들은 ‘매춘 자료관이니 부숴야한다’며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고, 심지어 ‘정찰대가 몰래 와서 사진을 찍거나 불을 지를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케다 에리코 관장은 “2008년 한 우익단체에서 WAM을 무력으로 진입하려고 하는 시위가 있었다”며 “경찰 2~3명이 왔는데도 진압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고 회상했다.

  때문에 WAM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혼자 자료관에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항상 경계해야 하며, 언제 우익단체에서 위협을 가할지 모르니 두명 이상 자료관에 남아있는 것이 관내 규칙이다. “우리는 항상 위험해요. 수위아저씨가 근무하신 뒤로 비교적 보호받는 중이에요. 우익단체로부터 많은 위협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다쳤던 사람은 없었어요.”

  지속적인 협박을 받는데도 이들이 계속 WAM을 운영하고 ‘위안부’ 관련 활동을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리코 관장은 ‘일본 정부가 전쟁의 책임을 지지않는 창피한 나라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 운영의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며 배상하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세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우리의 자손들에게 일본을 전쟁 책임을 지지 않은 창피한 나라로 남겨주고 싶지 않아요.”

  피해자 여성들이 에리코 관장에게 격려의 말을 보내주는 것도 ‘위안부’ 활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반인륜적인 범죄의 피해를 겪고 이 문제에 맞서 싸우는 각국의 여성을 만났기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두는 건 상상할 수도 없네요. 우리도 힘든 상황이지만 그분들이 겪었던 괴로움과 섬뜩함에 비하면 저희의 어려움은 별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WAM을 찾는 관람객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기관 운영에는 여전히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WAM은 국가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자립해 운영하는 민중 자료관이기 때문이다. 에리코 관장에 따르면 일본 시민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 내관자는 증가하고 있지 않지만, 해외에서의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에리코 관장은 일본 방송국 NHK PD로 재직했던 당시부터 ‘위안부’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위안부’ 관련 방송을 활발히 만들었지만 1997년 이후 방송국에서의 압박이 시작됐다. 이후 ‘위안부’ 관련 기획안을 제출해도 통과되지 않아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없었다. “1993년 고노담화 이후,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제기되고 관련된 논쟁이 잘 이루어지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1997년, 우파의 비판이 점점 강해지면서 ‘위안부’가 금기어처럼 돼버렸어요.”

  외압에도 불구하고 에리코 관장은 ‘위안부’ 관련 영상을 제작하는 그룹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피해 여성과 병사의 증언을 기록했고 이 활동이 시민활동의 시발점이 됐다. “중국 원정의 출정 병사였던 아버지께 병사들의 가해행위를 취재해도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 산서성으로 직접 취재하러 갔었고, 그 이후 동료들과 함께 중국 산서성의 성폭력 피해자들의 재판 및 의료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를 만들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어요.”

  에리코 관장은 WAM을 찾는 관람객들이 피해 여성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전시된 패널에 집중해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하나하나에 생년월일, 피해정보, 이후의 인생을 압축시켜 놓았어요. 단순한 피해 여성의 사진이 아닌 그녀들의 인생을 전달하는 개인 패널로 심도있게 관람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본인 내관자는 많지 않지만 WAM을 찾은 일본인들은 매우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에리코 관장에 따르면,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비중이 줄어들었고 아예 기술조차 되어있지 않은 책도 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가는 일본인들이 있다고 했다. “뉴스에서조차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도 이 문제에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위안부’ 문제를 이곳에서 배우고 많은 충격을 받곤 하죠.”

  에리코 관장은 작년 12월28일 한일합의에 대해, 일본이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했다면 제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체결됐기 때문에 이 합의에 대해 한국에서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 이후 제대로 된 행보를 보였으면 좋겠어요.”

  에리코 관장은 한국 대학생들이 ‘위안부’ 문제를 한국이나 일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전시 성폭력으로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잔혹한 전쟁범죄라는 것이다. “‘위안부’를 비롯한 전시 성폭력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 시대를 현재의 젊은 세대와 미래 세대들이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오늘날에도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분쟁지역에서 전시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잖아요. 전쟁이 발생하면 여성이나 아이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에리코 관장이 꿈꾸는 사회는 전시 성폭력이 사라지는 사회다. 이를 위해 그는 ‘위안부’ 피해 및 전시 성폭력의 피해기록을 찾고, 보존하고,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가 전쟁에 대한 책임, 전후 책임을 제대로 지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들에게 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하도록 해야죠. 그러기 위해서 이런 인권침해 실태를 보존하고 모아서 공개하는 것, 더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도 잊혀지지 않도록 전하는 것이 WAM의 최종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