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들여다보는 여성인권,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영화로 들여다보는 여성인권,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 김서로 기자
  • 승인 2016.0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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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전쟁터와 성폭력 사건 그리고 직장 내 가장 낮은 곳에 여성의 인권이 자리한다. 본지는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인권을 다룬 영화 세 편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거듭 반복되는 여성인권 탄압을 바라봤다.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 ▲학교 성폭력 피해 여성 ▲직장 내 워킹맘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 잃어버린 권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귀향’(2016)이 전쟁 중 탄압받은 여성의 인권과 전쟁이 끝난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고발한다면 영화 ‘한공주’(2014)는 성폭행 피해 여성이 오히려 책임을 떠안는 부조리를 낱낱이 밝힌다. 한편, 영화 ‘가족 시네마-인 굿 컴퍼니(In Good Company)’(2012)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올바른 권리를 요구하기는커녕 직장에서 눈치 보기 바쁜 워킹맘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귀향: 전시 성폭력, 끝나도 끝나지 않은 소녀들의 ()

  영화 ‘귀향’은 과거의 고통과 그 기억 속에서 여전히 아픈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일본의 만행을 고발한 작품이다. 영화는 일제 치하 전쟁 상황에서 처절하게 짓밟힌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한(恨)에 귀 기울이고 일본의 만행을 낱낱이 알린다.

  어느 날 갑자기, 이국땅의 위안소로 끌려간 소녀들은 일본군에 의해 ‘황군(皇軍)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상상조차 못 할 잔인한 구타와 성폭행이 위안소 소녀들에게 매일 가해진다. 그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온몸에 상처를 안은 채로 살해 당하기까지 한다. 무고하게 위안소로 끌려가지만 않았다면 가족과 함께 저녁밥을 먹고, 첫사랑에 설레고, 첫 달거리를 축하받았을 소녀들이다.

  영화에는 위안부 피해 여성의 혼을 위로하는 무속신앙의 굿이 해결방법으로 등장한다.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이대로 살아갈 수도 없는 위안소의 삶에 묶여 절망하는 날이 반복된다. 일본군이 후퇴하게 된 날, 가까스로 탈출한 영옥(손숙 분)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쓰러진 친구 정민(강하나 분)을 두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영옥은 정민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 괴로워한다. 이에 무당 견습생 은경(최리 분)은 굿을 통해 정민의 영혼을 불러낸다. 은경의 몸을 빌려 영옥을 만난 정민은 “이제 (아픈 기억에서) 그만 나와도 돼”라며 영옥을 달랜다.

1991년 고 김학순 여사가 최초로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고발한 이후 동사무소마다 ‘위안부 피해 신고 창구’가 생겨났지만, 배려 없는 무관심 속에 피해자들은 또다시 상처를 입을 뿐이었다. 영화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방문한 영옥은 “미치지 않고서야 (본인이) 신고하러 오겠냐”는 창구 직원들의 말을 듣고 “그래, 나 미친년이다”라며 울부짖는다. 전쟁으로 고통받은 여성의 인권과 강자에 의해 배제되는 약자의 인격은 과거의 문제이자 현재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굿으로써 영옥의 영혼을 위로한 은경도 성폭행의 아픈 기억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현재 성폭행 피해자 은경의 아픔이 치유되는 과정은 영화 속에서 미완으로 남는다. 약자인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위안부라는 지나온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서 쉬이 끝나지 않을 문제임을 시사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한공주: 잘못한게 없는데요 성폭력 피해 여성이 뒤집어쓴 낙인과 죗값

  영화 ‘한공주’(2014)는 2004년 밀양 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2005년 사건 수사가 종결된 후 집단 성폭행과 구타 등을 저지른 약 110명의 가해자 중 3명에게만 10개월 형이라는 미약한 처벌만이 따랐으나 피해자들은 경찰의 비인간적인 수사와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 사회의 편견 혹은 무관심을 겪었다.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다. 영화에서 집단 성폭행의 피해자 공주(천우희 분)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다니던 학교와 본래의 삶 그리고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쳐야만 했다. 실제 사건이 그랬듯 영화는 성폭력 피해자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며 억압을 가하는 잔인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주와 친구 화옥(김소영 분)은 또 다른 친구 동윤(김최용준 분)과 그 무리로부터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다. 임신하게 된 화옥은 강에 투신해 자살하고, 사건이 학교에 알려지자 공주는 학교의 강압으로 전학을 가고 거처도 옮긴다. 새로운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마침내 본래의 생활을 되찾아갈 때쯤 가해자의 학부모들이 학교로 찾아와 공주를 협박하고 소동을 일으킨다. 이후 공주는 지내던 곳에서 나와 도망치듯 떠난다.

  영화는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성폭행을 가한 또래 무리, 피해자인 공주를 강제로 전학시킨 교장, 합의를 강요하며 공주를 협박하는 가해자 학부모들, 가해자 편에 선 경찰의 수사···. 아무 잘못 없는 공주는 일상과 꿈, 친구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성폭행이라는 주홍글씨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 여성의 몫이기 때문이다. 남성을 오히려 ‘본능으로서 당연한 성욕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남성중심의 성적 담론이 저변에 깔린 이 사회에서 성폭행 피해 여성은 자신이 ‘진짜’ 피해자인지 입증하기를 요구받는다. 진심 없는 사과를 받아들이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도 공주의 책임이 돼버렸다.

  영화에서 공주는 수영장 회원권을 끊어 매일 수영연습을 한다. 죽기 위해 강물에 몸을 던지더라도 혹여나 살고 싶어질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거센 강물은 성폭행 이후 공주에게 주어진 모진 삶이었다. 공주는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들, 그리고 주변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외로이 헤엄쳐야 했다. 가해자 없이 피해자만이 존재하는 매정한 사회에 공주가 묻는다. “왜요? 사과를 받는데, 전 왜 도망가야 돼요?”
 

가족 시네마-인굿컴퍼니: 남성중심 직장문화 숨죽인 여성인권

  영화 ‘가족 시네마-인 굿 컴퍼니’(2012)는 여성만 희생하는 직장문화를 코믹하게 그리며 문제를 제기한다. ‘가족 시네마’는 옴니버스 영화 네 편으로 구성돼 있고, 그 중 ‘인 굿 컴퍼니’는 네 번째 영화다. 영화는 육아휴직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도 마음껏 누릴 수 없는 현실과 남성중심의 직장문화를 현실감 있게 보여줘 많은 ‘워킹맘’의 공감을 샀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일?가정 양립 문제를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 작년 모 기업에서 결혼한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산전후휴가를 주지 않은 것이 적발돼 사회의 공분을 산 적이 있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생겨나는 워킹맘의 외로운 고민과 고용주의 부당한 차별대우, 노동권 박탈과 경력단절 등의 문제는 비단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보팀에서 대리로 일하던 지원(최희진 분)은 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다. 다른 팀원들보다 야근을 덜 하는 지원은 미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 출근하지만, 팀장 철우(이명행 분)로부터 갑작스레 사직을 권고받는다. 임신으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발한 여직원들은 뭉쳐 파업한다. 업무가 쌓인 상황에서 직원 사이의 갈등은 심해져 간다. 그러나 철우의 협박 아닌 협박 또는 감언이설로 지원과 함께 싸운다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한다. 실직이 두렵고 재취업이 불투명한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단호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영화에는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대사가 두 번 등장한다. 대사는 철우로부터 시작해 철우에게로 돌아온다. 팀장 철우는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부하직원 아름에게 “공과 사를 구분하라”며 쏘아붙인다. 그러나 정작 야근하던 도중 만삭인 아내를 데리러 간 것은 철우다. 출산이 임박한 아내가 어린이집에서 홀로 일하다 쓰러진 긴급한 상황에서 철우는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응급실로 향한다. 아내가 아이를 무사히 출산하자마자 한 학부모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일터에서 돌봐야 할 아이들을 응급실까지 끌고온 데에 분노한 학부모는 철우의 뺨을 때리고 “공과 사를 구분하라”고 말한다.

  철우는 직장과 가정에서 이중적인 남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만삭의 몸으로나마 직장에서 일하려는 아내에게 “불필요한 일을 한다”고 말하고, 육아하는 부하직원을 나무라면서 정작 자신은 가정을 돌보러 근무지를 이탈한다. 입맛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상사를 두고도, 임신한 직장인 지원은 “양수 터지기 직전까지 일하겠다”, “휴직도 한 달만 쓰겠다”며 끝까지 매달려야만 했다. 어떻게든 자기 일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결국 등 떠밀려 쓴 지원의 사직서가 수리된다. 지원의 공석은 남성 신입사원이 차지하고 들어온다.

 

귀향(2016)

1943년,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난다. 정민은 함께 끌려온 영희(서미지 분),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제2차 세계대전, 차디찬 전장 한가운데 버려진 정민과 아이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일본군만 가득한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현장이었다.

한공주(2014)

열 일곱, 누구보다 평범한 소녀 한공주. 음악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고, 친구가 있지만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신 웃을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노래는 공주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 학교의 학부형들이 공주를 찾아 학교로 들이닥치는데···.

가족시네마-인 굿 컴퍼니(In Good Company?2012)

‘임산부가 걸림돌’ 출산문제로 부당해고 위기에 처한 여직원을 둘러싸고 이기적인 직장동료들의 눈치보기가 시작된다. 여성의 임신과 육아의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세상을 고발한다. 제공=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