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한국의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박물관)이 2일부터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소장품 상설전’을 공개했다. 관람객들은 ▲그림과 글씨 ▲근현대미술 ▲도자공예 ▲금속공예라는 주제로 전시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 서화(書畫)를 통해 살펴보는 조선시대의 삶

  박물관 입구 오른쪽에 있는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원색계열의 화려한 색감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십장생도’ 병풍이 눈에 들어온다. 십장생도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십장생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소나무, 돌, 불로초 등의 10가지 사물로, 이들을 그린 병풍은 왕실에서 정초 행사 또는 여러 의식에 장식화로 사용된다. 십장생류는 그림뿐만 아니라 도자의 문양으로도 널리 사용됐다. 

▲ 화려한 색감의 십장생도

  발걸음을 돌려 옆으로 가다 보면 ‘조문명의 초상’이 등장한다.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문신(文臣)인 조문명의 초상화에는 관복을 입고 호피가 깔린 의자 위에 오른쪽을 바라보고 앉은 전신상이 크게 그려졌다. 머리에 높은 검은색 사모를 쓰고 흉배가 달린 청록색의 관복을 입었으며, 손은 맞잡아 소매 속에 넣고 발은 받침대 위에 팔(八)자로 놓여있다. 인물의 학식과 성품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세밀하게 묘사된 조문명의 초상화는 당시의 관복의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18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형식이나 화법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실 중간에는 보물 제638호로 지정된 기록화 ‘기사계첩’이 길게 펼쳐져 있다. ‘기사계첩’은 숙종이 기로소(조선시대 나이가 많은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를 그린 기록화다. 경현당에서 베푼 잔치를 기록한 ‘경현당석연도’,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에서 축하하는 글을 올리는 장면의 ‘숭정전진하전도’ 등 이번 전시에서는 기사계첩에 수록된 주요 행사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다. 

△ 한눈에 조망하는 근현대 한국미술의 흐름
  조선시대의 그림과 글씨를 지나면 근현대의 미술을 볼 수 있는 장이 펼쳐진다. 전통 서화뿐 아니라 근현대 한국미술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이불 작가의 ‘사이보그’는 일반적인 도자 모양이 아니다. 관절이 두드러진 손 한쪽이 잘려있는가 하면, 로봇의 발을 잘라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사이버네틱(cybernetics)과 오거니즘(organism)의 합성어인 사이보그는 생물체와 기계장치의 결합을 통해 완벽한 신체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재앙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다. 

▲ 도자 '사이보그'의 일부

  그 옆으로는 검은색의 윗면과 푸른색의 아랫면으로 산과 바다의 풍경을 묘사한 김보희 작가의 ‘무제’가 있다. 자연이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탐구하는 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실성과 추상성의 미묘한 중간에서 산수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담아냈다. 이외에도 근대기 서양화단의 대가인 김인승, 도상봉 등의 작품과 현대미술의 조형적 실험을 대표하는 박서보, 이기봉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정광호 작가가 구리선을 용접해 만든 황금색의 항아리 모양 오브제가 놓여있다. 

△ 도자에서 찾는 조상들의 삶

  제1전시실을 나와 계단을 가로지르면 제2전시실의 입구가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도자공예와 금속공예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본교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 도예작품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다양한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물관은 이번 상설전에서 삼국시대부터 근대기까지의 작품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 청자 순화4년명 호

   특히, 오랜만에 일반에 공개되는 보물 제237호 ‘청자 순화4년명 호’는 바닥에 적힌 음각 명문으로부터 933년의 제작 시기와 고려 태조의 종묘용 제기였던 용도를 알 수 있어 한국 도자기 역사 연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유물로 손꼽힌다. 또한, 조선후기 책가도를 재현한 부분에서는 높게 쌓아놓은 책더미와 고급 문방용품들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실제 백자 문방구들이 진열돼 색다른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 책가도 형상으로 전시된 조선백자

 

△섬세한 손으로 두둘이고 다듬은 철의 예술
  마지막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다양한 금속공예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금속공예실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의 동검, 청동 유물 등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이어 삼국시대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에서 태어난 귀걸이와 머리 및 금관에 올리는 꾸미개가 전시돼 있다. 백제시대 ‘금동투각 신발’ 역시 관람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 정교한 문양의 금동투각 신발

  전시장 한쪽에는 정병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겉보기에는 모습이 같지만 하나는 금속으로, 하나는 도자로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에는 금속공예와 도자공예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나란히 전시된 유물들에서 이러한 영향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 (좌)청자 동병, (우)동제 정병 이명진 기자 myungjinlee@ewhain.net

  청동기 시대의 동검부터 현대의 조형물까지. 네 개의 전시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우리나라 미술사를 다 파악할 수 있다. 상설전은 올해 말까지 계속되며, 주요 유물은 교체 전시될 예정이다. 관람 시간은 공휴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월요일~토요일 오전9시~오후5시까지며,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를 관람한 한예지(22·여·인천 남구)씨는 “전시를 둘러보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 미술사의 시초부터 말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며 “그림과 글씨부터 도자기, 금속 공예 작품 등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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