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프레임을 벗어나 보통의 수면에 파동을 일으키다
고정된 프레임을 벗어나 보통의 수면에 파동을 일으키다
  • 장운경 기자
  • 승인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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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전시장 전경. 이승연 기자 hilee96@ewhain.net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보통'을 불합리하다고 외치는 설치미술 작가가 있다. '남들처럼', ‘일반적으로’ 사는 삶을 거부하는 박혜수(조소 석사·00년졸) 작가의 13번째 개인 전시회 ‘Now Here Is Nowhere’가 4월9일(토)까지 서울시 강남구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박 작가는 보통의 삶을 강요하는 사회 아래 개인의 삶에서 사라지는 가치에 관심을 가졌다. 본지는 보통을 거부하는 그의 이유를 알기 위해 2일 전시회를 찾았다.  

  박 작가는 2013년에 실시한 ‘보통의 정의’ 프로젝트를 더 발전시켜 전시를 구상했다. 그는 전시장의 층마다 부제를 매겼다. 2층은 '현실의 세계', 3층은 '보통의 세계', 4층은 ‘일그러진 보통의 세계’다. 관람객이 각 층을 오르면서 이 정도의 성공에 만족할지, 더 올라갈지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것이 그의 의도다.
 

2층 ‘현실-Bottom Life’ 
  2층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Gloomy Monday’다. 이 작품은 마치 기다란 필름이 한쪽 벽면 전체에 걸린 모습으로 보인다. 박 작가는 우리나라의 신문을 길게 이어 붙여 신문의 부정적인 단어와 문장에 구멍을 뚫어 오르골 악보로 만들었다. 이 악보와 연결된 오르골 연주 장치를 관람객이 직접 돌려 연주할 수 있으며, 구멍이 많을수록 다채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부정적인 기사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 역설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세상의 소음이 모두 음악이라면 세상이 정말 아름답지 않겠냐’는 말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 

  작품 바로 왼쪽을 보면 거대한 탑이 있다. 2층부터 4층까지인 전시장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이 작품은 ‘World’s Best’다. 2층에서 볼 때 천장을 경계로 그 윗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2층에서만 볼 수 있는 탑의 아랫부분은 바닥을 향해 넓게 벌려져 있어 성공을 위한 기회로 해석할 수 있다. 박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남들처럼 성공을 하려면 꿈과 사랑 같은 개인의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개인의 가치를 지킬지, 남들처럼 성공을 할지 선택을 고민하도록 의도했다.

▲ World's Best 제공=송은문화재단

3층 ‘규격화된 보통-Average Life’
  3층으로 올라가면 천장에 모빌처럼 매달린 채 움직이고 있는 스테인리스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이 거울들은 각각 다양한 크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지 규격에 맞춘 것임을 눈치 챌 수 있다. 바로 ‘A0 to A8’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거울을 보통의 프레임으로 설정했다. 철저히 규격화한 거울이 움직이며 주위를 비추고 있지만, 거울의 프레임을 벗어난 것은 비추지 않는다. 오직 거울이 비추는 순간에 어떻게 타인에게 보이는 지만 중요하다. 타인만을 신경 쓰며 삶의 주체성을 잃게 하는 보통의 부정적인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3층에 있는 ‘World’s Best’의 중간 부분은 3개의 볼록 거울을 달고 있다. 성공의 중간 단계까지 올라온 사람들이 밑에서 올라오려는 다른 사람들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듯한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다시 한 번 관람객은 이 중간 단계에서 더 올라갈지, 머무를지 고민하게 된다.

  이 작품의 맞은편 방에 들어가면 어둠 속에서 많은 레이저가 수직·수평으로 교차하고 있다. 바닥에는 관람객이 올라설 수 있는 넓은 판이 있다. ‘가변적 평균대’라는 이 작품에 올라서면 직교하던 레이저의 균형이 무너지고 위험을 알리는 듯한 경보음이 울린다. 작가는 이를 통해 균형이 무너지고 경보음이 울리지만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관람객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는 보통을 벗어나도 괜찮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 가변적 평균대 제공=송은문화재단

4층 ‘일그러진 보통의 풍경들’ 
  4층으로 올라가면 작가가 바라보는 세태를 이전 층보다 더 자세히 느낄 수 있다. 4층 입구 왼쪽을 보면 트럼펫 손잡이에 깃발처럼 베갯잇이 걸려있다. 이 베갯잇이 가리키는 방은 ‘H.E.L.P’라는 작품이다. 기상 알람을 연상하게 하는 트럼펫과 시계 초침 소리로 가득 찬 방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의 불면증을 상징한다. 작가는 직접 사용했던 베개를 바닥에 소품으로 설치해 현실감을 높였다.

▲ H.E.L.P 이승연 기자 hilee96@ewhain.net

  방에서 나와 왼쪽 코너로 이동하면 보통을 위해 희생당하는 가족을 볼 수 있다. ‘1,875 Days of Lonely Home’은 날짜가 찍힌 휴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는 가족과 떨어진 기러기 아빠의 애환을 상징한다. 기러기 아빠가 날짜를 세며 가족을 그리워하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바로 왼쪽에 있는 ‘Go, get it’은 부모가 자녀를 남들과 비슷하게, 보통만큼은 하게 하려고 집착하며 훈육하는 모습이 사랑의 매와 테니스공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자녀의 성공을 위한 교육이 애완견에게 공을 물어오게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작가의 비판적인 태도를 느낄 수 있다.     

▲ Go, get it 이승연 기자 hilee96@ewhain.net

  4층의 ‘World’s Best’의 윗부분은 최상의 성공을 차지한 사람을 위한 의자가 설치돼 있다. 반면, 의자 양쪽에는 항복을 의미하는 백기가 걸려있다. 하나의 백기는 1위였던 사람이 항복하고 내려간 것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2등이었던 사람이 지쳐 항복했을 때 흔들었던 것이다. 작가는 영원할 수 없는 성공을 보여주며, 개인의 가치를 포기할 만큼 보통을 위한 성공이 중요한 것인지 관람객에게 마지막 의문을 던진다. 

  이 전시회를 관람한 이수민(26·여·서울 서초구)씨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젊은 예술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 오게 됐다”며 “이 전시는 보통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제시하는 한 편의 소설 같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 Game World's Best 이승연 기자 hilee96@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