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 지하철은 시내까지 만원이다. 콩나물 시루처럼 가득 찬 지하철의 오른쪽 문에서 왼쪽 문으로의 이동은 쉽지 않다. 게다가 내가 내리는 역은 하차 인원이 너무 적어 새내기 때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가지 못해, 다음 역에 내린 적도 있었다. 내일 개강을 앞두고 아침 지하철을 떠올리니 그때가 생각이 났다. 한 정거장 더 지나 경복궁역에서 내려, 부랴부랴 강의실로 뛰어들어가서 지각을 간신히 면했는데,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나와 선배, 동기들은 베트남, 라오스를 다녀왔다. 그 중에서도 베트남의 호치민과 하노이는 여느 도시보다 바빴다. 우리나라의 출근 시간보다도 더 붐볐다. 길을 건널 때면 사람이 지나가도 속도를 줄여주지 않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틈을 요리조리 피해 건너야 했다. 또, 도시의 공기는 오토바이 매연으로 경적소리로 가득했다. 베트남의 하루는 어찌나 일찍 시작되던지 휴대폰 알람보다 먼저 울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그렇게 바쁘고 정신 없는 도시에 지쳐갈 때면, 힘든 우리를 위로라도 하는 듯 한껏 느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번은 호치민 껀터에서 수상시장에 들렀다. 수상시장은 새벽에 열리기 때문에 꿈속인 냥 배를 타고 메콩강을 지나는 데 모터 소리를 내며 한 배가 우리 배에 접근해 왔다. ‘반미’라고 불리는 베트남식 샌드위치를 파는 아주머니였다. 우리는 아무도 아주머니의 반미를 사먹지 않았다. 새벽이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탄 배의 모터보다 턱없이 느린 아주머니의 노는 멀어져 갔다. 반미를 하나도 팔지 못한 아주머니는 서서히 멀어져 갔지만 우리를 향해 예쁘게 웃어주셨다. 

  다른 한번은 방비엥에서였다. 블루라군에 물장구치러 이동하며 우리는 ‘툭툭’이라 불리는 트럭에 올라탔다. 빨리 달려 숙소에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트럭 뒤 모래먼지 사이로 두 명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은 넓게 번져가는 붉은색 모래먼지 사이에서 신이 난 듯 자전에 페달을 밟으며 우리를 쫓아 하교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교복 셔츠는 유난히 희었는데 먼지에 더럽혀질 옷은 걱정도 되지 않는지, 뜨거운 햇살에 페달을 구르는 게 힘들지도 않는 지 마냥 웃고 있었다.  

  반미 파는 아주머니, 툭툭이 뒤를 달려오는 꼬마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오토바이처럼 살아온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도 왜 더 빠르지 못해 초조해 하는지 말이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느리지 못한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이번 학기에도 지각을 하고 만다면 또 투정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사는 아주머니와 아이들을 기억해본다면 곧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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