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교에 입학한 정가을씨. 김혜선 기자 memober@ewhain.net

  희귀병으로 학업을 중단했다가 본교에서 꿈을 다시 이어가게 된 신입생이 있다. 투병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미디어(커미) 학부에 입학한 정가을(커미·16)씨를 24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씨는 미국의 애플(Apple) 전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병으로 알려진 ‘다발성 내분비종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유전성 질병이라 아버지와 언니도 같은 병을 앓았고,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생 때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받은 검사로 발견했는데 가족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어요. 얼마 전 소규모의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약물치료와 통원치료를 병행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후 그는 병세가 심한 언니 대신 실질적인 가장이 돼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의 길로 나가게 됐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준비했던 친구들에 비해 늦었다는 생각에 투병의 아픔은 뒤로 하고 취업 준비에만 몰두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질 것 같아서 후회할 만한 여유가 없었어요. 모의면접과 자기소개서 첨삭으로 바빴죠.”

  뒤늦게 취업을 준비했지만 취업준비생이 선망하는 공기업에 입사했다. 정씨는 좋은 평판을 얻으며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학업을 완전히 포기한 적은 없었다. “회사에서 먼저 인정받아야 주위 사람들이 어떤 도전에도 믿고 응원해 줄 것으로 생각했어요. 약 1년을 근무하고 나니 ‘싹싹하게 일하는 친구’라는 수식어가 붙더라고요. 그때부터 학업을 다시 이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직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다는 그는 가까운 사람들의 믿음으로 수험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지인들은 제 선택을 항상 믿어줬고 어떤 길을 가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죠. 이런 믿음이 힘겨운 수험 생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어요.” 

  고등학교 입학 당시 아버지의 병원생활을 통해 그는 다큐멘터리 PD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다. 정씨는 투병의 고통이 병원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가족처럼 힘든 것이 병원에서는 흔한 일이었죠. 병마와 싸우며 소외된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로 다뤄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요.”

  정씨는 여러 대학 중 본교에 지원한 특별한 이유로 본교 출신 언론인이 많은 점을 꼽았다. “동문끼리 끌어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 언론인을 많이 배출한 본교에 지원했어요. 먼저 진출한 선배들이 저를 잘 이끌어주실 것으로 생각했죠.”

  나이로 보면 ‘삼수생’인 그는 동기들로부터 ‘친해지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전까지 누군가에게 도움받는 역할만 해왔다는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학생회에 들어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며 대학 생활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동기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것이 재미있어요. 친구들이 처음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될 때 저한테 취업에 대해 물으면, 편하게 물을 수 있는 언니이자 동기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스무 살 새내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생활도 하나의 사회생활이니 상처도 받고 시행착오도 겪게 되겠죠. ‘나의 20대가 맞는 것인지’, ‘나만 이런 것인지’하는 생각에 친구들이 우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아픔은 미래의 자양분이 될 거예요.”

  다발성 내분비종양증=내분비샘에 다발성으로 샘종 또는 과다형성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대부분 가족성으로 발병하기 때문에 상염색체 우성유전질환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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