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자신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을 보여준 'my boyhood'
▲ 막 깨어난 생명의 느낌을 재현한 '부끄러워도 괜찮아요'
▲ 간접적 악수를 통해 모순적이고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어색한 악수"
▲ 작가 자신이 창조한 불완전한 낙원 "에덴"
▲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감정들을 가죽 조각으로 표현한 "봉합:재생의 기원"
▲ 죽음과 윤회의 과정을 표현한 '귀로'
▲ 순수함과 이기심 사이의 두 사람 관계를 표현한 'The Bastard'
▲ 여러 그릇을 테디베어 형태로 재치있게 배치한 'parts of part'
▲ 환경으로 인해 변한 식물을 생동감있게 드러낸 '꿈틀 no.2' 이승연 기자 hilee96@ewhain.net

 조형예술대학(조예대) 학생들이 4년간의 학부 생활을 마무리하며 예술적 고뇌를 작품으로 남겼다. 학생들의 예술혼은 24일~29일 조형예술관을 가득 채웠다.

 조형예술학부, 섬유패션학부의 섬유예술전공, 패션디자인전공이 참여한 2015 조예대 졸업작품전이 24일~29일 조형예술관A, B, C동과 조형예술관 내 이화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 앞서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전시가 9월18일~9월23일, 공간디자인 9월21~9월26일, 산업디자인전공 전시, 영상디자인전공 전시가 9월30일~10월6일, 섬유패션학부 패션디자인전공 패션쇼가 13일에 열렸다.

 조형예술관A동에는 조소전공, 동양화전공, 서양화전공, 섬유예술전공 학생들이 층별로 작품을 전시했다.

 조형예술관A동 1층으로 들어서면 발가벗은 소녀가 투명한 판으로 만든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판 속에는 깨진 거푸집들이 가득 차 있다. 박다나(조소·12)씨의 작품 ‘부끄러워도 괜찮아요’다. 박씨는 발가벗은 소녀를 통해 부끄러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깨진 거푸집들을 넣어 이제 막 깨어난 생명의 느낌을 재현한다. 박씨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기 때문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생각해 발가벗은 소녀의 모습을 표현했다”며 “제목의 의미처럼 인간은 있는 그대로 부끄러워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품도 돋보였다. 박씨의 작품을 뒤로하고 왼쪽 복도를 따라 걸으면 이해인(조소·12)씨의 ‘어색한 악수’가 있다. 이씨는 작품을 통해 pvc 재질의 빨간색 공업용 장갑 2개가 악수하는 형상을 표현했고 관객들이 작품에 직접 손을 넣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겉으로는 반가운 척하지만 속으로는 반대 감정을 갖는 현실의 인간을 풍자한 작품이다. 이씨는 “어색한 사이지만 악수를 해야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도구”라며 “이 작품에 직접 참여해 악수하면 상대방과 직접적인 접촉은 피할 수 있지만, 악수를 하는 모순적이고도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고고한 느낌의 동양화 작품들이 관객들을 반긴다. 동양화전공 학생들의 작품들 사이를 걷다 보면 얼굴에 검버섯 가득한 노인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 눈에 띈다. 노인의 모습을 중심으로, 거의 다 써 짧아진 향로가 왼쪽에 있고 아직 쓰지 않은 듯한 기다란 향로 그림이 오른쪽에 배치돼 있다. 문현지(동양화·11)씨의 작품 ‘귀로’다. 그는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할머니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 죽음과 윤회의 과정을 표현했다. 문씨는 “인물이 바라보는 쪽의 향로는 거의 타들어 가고 있지만, 연기를 내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며 “이 연기가 인물을 지나 오른편에 있는 새 향로로 향하고 있는데, 이는 윤회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식물의 형태를 역동적으로 담은 배윤재(동양화·12)씨의 ‘꿈틀 no.2’는 일본 방사능 피폭으로 기괴하게 변한 식물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작품은 비늘 모양의 피부가 식물을 감싸고 그 사이에서 잎과 꽃이 꿈틀거리며 나오는 형상이다. 배씨는 “식물을 그리고 싶어 조사하다 방사능 피폭으로 기괴하게 성장한 식물과 꽃을 보고 감명을 받아 모티브로 잡았다”며 “환경변화를 통해 괴이하게 변한 식물이지만 이 역시 정상적인 생명체와 똑같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 꿈틀거리는 이들의 생명력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한 층 더 올라가면 학생들의 독특한 세계관을 다양한 색채와 질감으로 담아낸 서양화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308호로 들어서면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백마의 모습을 담은 강력한 색감의 그림이 눈에 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다 보면 어딘가 섬뜩하다. 백마 뒤에는 눈의 초점을 잃은 검은색 말이 화살과 화살통을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다. 박보민(서양화·12)씨의 작품 ‘The Bastard’다. 화살을 맞은 말은 상처받은 순수한 영혼을, 도망가는 자는 말을 현혹하기 위해 말의 탈을 쓴 사람을 의미한다. 자신의 목적만 달성한 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는 것을 작품으로 비유했다. 박씨는 “두 사람의 순수함과 이기심 사이의 상반된 관계를 긴장감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며 “연인관계에 있어서 이별 후에 보면 한쪽은 상대를 바보처럼 믿고 사랑했던 반면, 다른 한쪽은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했기보다는 온전히 이기심에 의해서 사랑한 척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308호에서 나와 310호로 들어가면 초록 빛깔의 자연을 담은 나누리(서양화?11)씨의 작품 ‘에덴’이 있다. 나씨는 “?내가 창조한 에덴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에 착안해 그렸다”며 작품 취지를 설명했다. 작품 속 에덴의 모습은 신비로웠지만, 물감이 흘러내린 듯한 질감을 표현해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나는 신과 달리 불완전하므로 내가 창조한 낙원은 완벽한 유토피아가 될 수 없고 나를 닮아 결핍되고 곧 사라질 것 같은 면도 드러난다”고 말했다.

 4층에는 섬유예술전공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4층 복도에는 소가죽, 양가죽 등의 가죽 조각을 패치워크(여러 가지 색상, 무늬, 소재, 크기, 모양의 작은 천 조각을 서로 꿰매 붙이는 것)한 기괴한 모습의 설혜윤(섬예·12)씨의 작품 ‘봉합:재생의 기원’이 공중에 매달려 있어 눈에 띈다. 마치 살덩어리가 뭉쳐져 있는 모습 같다. 설씨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감정들을 가죽 조각으로 표현했다. “상처받고 떨어져 나간 잔여물들을 살 조각으로 은유해 그 조각들을 실제 살을 봉합하듯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기원하며 꿰매는 작업을 했다”며 “이 과정을 치유의 마음으로 꿰맸지만, 결과적으로 기형적인 모습이 만들어져 이는 완전한 치유가 아님을 뜻한다”고 말했다.

 조형예술관B동 3층으로 올라가면 도자예술전공 학생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복도를 따라서 아기자기한 모습의 도자기들이 놓여있다. 이 중 최지원(도예·11)씨의 ‘my boyhood’는 젖병이 점점 녹으면서 술병으로 변하는 과정을 5개의 오브제로 나타냈다. 각 오브제에 쓰여있는 글귀는 최씨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노래와 영화 글귀가 써있다. 최씨는 “이번 학기 작업의 큰 틀은 나 자신의 역사성에 주목했는데 그중 이 작품은 소년기를 담고 있다”며 “ 내가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을, 어린아이를 상징하는 젖병이 큰 성인을 상징하는 술병으로 변화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작품을 뒤로 하고 계속 복도를 걷다 보면 여러 개의 그릇을 테디베어 모양으로 배치해 만든 재치있는 작품이 있다. 하지영(도예·12)씨의 작품 ‘part of parts’다. 하씨는 “항상 식탁 위의 그릇들이 정형화돼 있다고 생각해 재밌는 식탁, 눈이 즐거운 식사를 위해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며 “이 그릇들은 전시된 테디베어 모양 말고도 강아지 모양 등 다양한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조형예술관C동 302호에는 패션디자인전공 학생들의 색다른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전시되기도 했다.

 전시를 관람한 오동헌(영디·13)씨는 “이번 전시를 포함해 앞서 한 다른 과들의 전시 모두 전문적으로 느껴졌다”며 “작년보다 퀄리티도 높고 볼거리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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