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여성혐오’다. 여성혐오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대상화, 타자화를 의미한다. 이는 여성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평등하지 못한 젠더권력관계에서 비롯한 사회 구조적인 ‘여성멸시’에 해당한다. 문제는 여성혐오가 매우 공고하게 구조화된 나머지, ‘김치녀’, ‘김여사’, ‘아몰랑’ 등과 같은 여성혐오 단어들이 일상생활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해 다루는 ‘여성혐오를 진단하다’를 3주간 연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여성혐오 속 이화’라는 주제로 여성혐오와 본교의 상관관계에 관해 알아본다.

△이화여대를 향한 마녀사냥…성적, 외적 비하 일삼아

재작년 9월 본교 정문에는 본교와 본교생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건 남성이 시위를 하다 경찰에 인계됐다.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 회원으로 밝혀진 이 남성은 일베에 본교 앞에서 벌인 피켓 시위 인증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트위터에서 본교생을 비난했다. 해당 남성의 피켓에는 ‘비생계형 창X OUT’, ‘닳고 닳은 XX OUT’ 등 자극적이고 성적인 비난이 섞여 있었다. 당시 본교 제45대 총학생회는 해당 남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피해자가 특정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이유로 고소가 취하됐다.

 뿐만 아니라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본교생 영상을 캡쳐해 비하하는 게시물이 온라인 상에 퍼지기도 했다. 10월28일 페이스북 ‘오지랖’ 페이지에는 ‘이대녀의 평균외모...jpg’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해당 게시물에는 본교생의 외모를 비하하며 희롱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이에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이 왜 토론 실력이 아닌 외모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냐’는 비판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악성 게시물의 확산은 본교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4월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에는 ‘일부 이대생 때문에 이화여대가 남성들로부터 욕먹는 이유’라는 글과 함께 반전·반군대 퍼포먼스, 군가산점 제도 폐지 등 본교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담은 게시물을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에는 군복을 입은 두 남자가 여자를 향해 총을 겨누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진과 함께 ‘군대를 갔다온 아들이 폭력과 살인만 배워서 엄마의 자궁을 파괴한다는 내용의 이화여대의 반전·반군대 퍼포먼스’라는 주장이 실렸다. 또한, 국방부 정문 앞에 페인트를 뿌리며 군가산점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이대생이라는 사진도 함께 게시됐다. 해당 게시물의 댓글에 일부 사람들은 ‘군인들 무시하는 X들 북한군한테 다 XX당하고 XX버렸으면’, ‘페인트로 저 X들 머리 염색시키고 싶다’며 본교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본교는 이러한 명예훼손에 법적대응을 진행 중이다. 10월16일 해당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4월에 이어 ‘이화여대의 저급한 수준’이라는 글과 함께 본교 총학생회가 태극기를 소각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에 본교 기획처 홍보팀은 해당 페이스북 관리자와 악성댓글 게시자까지 고소를 진행 중이며, 미국 페이스북 본사에도 해당 페이지 삭제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선입견에 둘러쌓인 본교생, 원인은 ‘여성의 대표성’

 학생들은 본교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사회 전반에 걸쳐 강하게 펴져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이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명품가방만 들고 다닌다’, ‘외모 치장에만 관심이 있다’, ‘여성우월주의적인 집단’ 등이다. 양승민(사과·15)씨는 “고등학교 남자동기가 이화여대에 합격했다고 하자 ‘너도 이 기회에 좋은 명품백 하나 사달라고 그래’와 같은 편견섞인 말을 별 생각없이 말한 적이 있다”며 “그 친구에게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을 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화가 났었다”며 본교의 편견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선영(커미·15)씨는 “나 또한 입학하기 전에 이대는 기가 세고 명품가방만 들고 다니며 학교생활이 재밌지 않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며 “이런 말을 주위에서도 농담조로 많이 건네지만 그때마다 많은 여성들이 모인 곳인만큼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이대생에 대한 선입견은 비단 최근 일만은 아니다. 20~30년 전에도 본교는 부정적 선입견에 노출됐었다. 졸업생들은 본교에 대한 선입견은 본교가 여성이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시절에 소수의 여성을 교육했던 곳이라는 특수성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ㄱ씨(사범대·81년졸)는 “학교 주변에 양장점(옷집)이 밀집돼있고 서점은 한 곳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치스럽고 소수 부르주아라는 선입견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진희(건강교육·90년졸)씨는 “콧대 높고 사치스러우며 외모에만 치중한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동시에 한국의 최고 여대로, 이화인임에 자부심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1971년 고려대 학생 40명이 본교 정문에서 사치향락을 중지하라는 사치성배격대회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고려대 학생들은 ‘당신의 낭비 속에 민족은 굶주린다’, ‘사치와 향락은 망국의 근원’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본교생에게 부치는 글을 나눠줬다. 이 글에는 ‘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어라’, ‘다방과 다과점으로 향하는 그대들의 발걸음을 서점으로 돌려라’, ‘귀부인과 같은 손가락으로 쌀을 씻어라’, ‘달랑거리는 핸드백을 내던지고 두툼한 책가방을 들어라’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잘못된 정보로 기사를 써 본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된 일도 있었다. 1991년 미국 주간시사잡지인 뉴스위크(Newsweek)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이대생의 사진이 ‘너무 빨리 부자가 되다’(Too Rich Too Soon)라는 제목과 ‘돈의 노예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Slaves to Money: Students at Ewha Women’s University)이라는 부제의 기사로 게재됐다. 하지만 이 날은 학생들이 한껏 치장하는 졸업사진 촬영날로 알려졌으며 학생의 초상권 침해문제도 함께 문제가 돼 서울민사지방법원의 1,2심의 판결에 의해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

  본교생이 아닌 학생들도 본교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들어봤다고 답했다. 성균관대 이효진(러시아어문학·13)씨는 “이화여대를 여성우월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집단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며 “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남학생들이 이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이대생은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본교에 대한 선입견을 일반화해 이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남성도 있었다. ㄴ씨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이대생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대생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외형적으로 예쁘지 않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ㄴ씨는 “이대생들은 자신의 대학 순위를 높게 평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대생보다는 타 여대생이 더 분위기가 있으며 이대생은 만나기 꺼려진다”고 덧붙였다. ㄷ씨는 “과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이대생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대생’에서 확장된 ‘한국여성’에 대한 여성혐오

 전문가들은 이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현재 우리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다. ‘명품을 좋아하는 이대생’, ‘시집 잘 가려고 이대에 간다’ 등 본교생을 겨냥하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된장녀’, ‘김치녀’ 등 전체 여성에 대한 혐오단어로 확대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학기 ‘연어프로젝트:한국여성나의뿌리를찾아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진옥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여성적 자의식을 개성적으로 표현했던 이대생들의 패션은 당당함과 세련성이 부각되면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사치스럽다는 오해를 낳았다”며 “여성지식인 집단을 표상하는 본교의 위상과 결부돼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자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교수는 “본교는 여성에 대한 편견, 나아가 이화에 대한 편견을 딛고 한국 여성교육의 산실로서 부단히 성장해왔다”며 “일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반화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 요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비혼 여성이 등장하는 등 사회 곳곳에서 여권 신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견제하고 억압하려는 남성 중심 사회의 속내가 최근 세태와 같이 여성혐오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현 상황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이다. 여성민우회 등 여성활동단체에서 활동한 바 있는 페미니스트 운동가 ㄹ씨는 “여권 신장의 과도기에서 이화가 밟을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며 “그 길에서 가장 끝까지 남아 모든 것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투쟁할 사람들 또한 바로 이화 안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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