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물들어가는 한국 사회, 여성혐오를 고발하다
혐오에 물들어가는 한국 사회, 여성혐오를 고발하다
  • 남미래 기자, 김소연 기자, 김서로 기자
  • 승인 2015.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대생은 루이비통 가방을 메고 스타벅스만 마시는 김치녀?”
남성잡지 <맥심코리아> 논란, 가수 송민호의 산부인과 발언 등 연이은 여성혐오 논란으로 현재 한국 사회의 성별갈등은 극에 달했다. 사회에 구조화된 여성혐오를 당연시 하고 문제의식과 비판의식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다수다.
하지만 전문가에 따르면 이러한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혐오하는 문제를 넘어 젠더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남성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억압하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 사회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조명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 여성혐오와 이화의 상관관계, 전문가의 의견 등을 3주간 심층적으로 보도한다. 첫 주에는 한국 사회 전반에 내재한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다루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 현상을 짚다’, 둘째 주는 여성혐오와 이화의 관계를 분석하는 ‘여성혐오 속 이화’, 셋째 주는 여성학, 대중문화 전문가 등을 초청해 여성혐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담은 ‘전문가가 바라본 한국 사회 여성혐오’에 대해 다룬다.

 

<편집자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여성혐오’다. 여성혐오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대상화, 타자화를 의미한다. 이는 여성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평등하지 못한 젠더권력관계에서 비롯한 사회 구조적인 ‘여성멸시’에 해당한다. 문제는 여성혐오가 매우 공고하게 구조화된 나머지, ‘김치녀’, ‘김여사’, ‘아몰랑’ 등과 같은 여성혐오 단어들이 일상생활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해 다루는 <여성혐오를 진단하다>를 3주간 연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을 짚다’를 주제로 연이은 여성혐오 이슈, 여성혐오에 대한 반발 움직임 등을 심층적으로 보도하고자 한다.

△연이은 여성혐오 이슈, 여성혐오현상의 대중화
‘THE REAL BAD GUY, 진짜 나쁜 남자를 보여줄게!’
9월 국내 유명 남성잡지가 성범죄를 미화하는 표지를 내 논란이 불거졌다. 남성잡지 <맥심 코리아> 9월호 표지에는 한 남성배우와 자동차 트렁크에 다리가 묶인 채 갇혀있는 여성이 등장했다. 사진 옆에는 ‘THE REAL BAD GUY’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성범죄를 성적 판타지로 미화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잡지 내부는 더욱 심각하다. 여성을 비닐에 싼 채로 트렁크에 가두는 등 여성 납치, 강간 등 성범죄를 연상케 하는 사진들이 실렸다. 사람들은 용납할 수 없는 성범죄를 성적 판타지로 미화했으며, 이는 성범죄 피해 여성을 두 번 죽이는 사진과 문구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이에 <맥심 코리아> 측은 해당 호를 전량 회수해 폐기하고 이미 판매된 9월호로 인해 발생한 판매수익은 모두 성폭력 예방 또는 여성 인권단체에 낼 것이라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방송?연예계에서도 여성비하 문제로 여러 논란이 일었다. 8월에는 가수 송민호씨가 Mnet ‘쇼미더머니4’에 출연해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리 벌려’라는 가사를 써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켜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Mnet과 송씨에게 사과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개그맨 장동민씨가 과거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에서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은 것이 문제가 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몇몇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껍데기를 씌운 단어들도 일상화됐다.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된장녀’(명품만을 밝히는 여성), ‘김치녀’(남성의 경제력에 기생하는 한국 무개념 여성)와 운전에 미숙한 여성을 지칭하는 ‘김여사’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포털사이트 백과사전에서도 등장하는 등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가 일상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학 전문가는 여성비하단어의 통용이 혐오를 재생산하고, 젠더권력관계를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의 기득권 세력인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 기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여성 혐오적 발언을 생산 및 유포한다는 것이다. 이은아 교수(사회학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은 기득권층이 위계 및 권력관계를 유지하려는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여성비하 단어의 유행은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쳐 여성에 대한 편견을 생산한다고 지적했다. 논문 ‘전략적 여성혐오와 그 모순: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게시물 중심으로’(엄진, 2015)를 쓴 엄진(여성학 석사?15년졸)씨는 “‘아몰랑’이나 ‘김치녀’ 등의 단어는 유행처럼 번져 단어가 탄생한 맥락이 삭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SNS에서 무논리적인 한 여성을 비꼬는 데에서 유래한 ‘아몰랑’이라는 여성비하단어는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되며 심지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문제의식 없이 등장하기도 했다. 엄씨는 “대중들은 ‘일베에서 나온 단어인 줄 몰랐다’, ‘여성혐오단어인지 몰랐다’라고 말하지만 비하단어의 발화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만들어내는 시작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일간베스트(일베) 사용자라고 밝힌 ㄱ씨는 “일베는 근거 없이 비판하지 않는다”며 “남성을 혐오하는 특정 사이트에서 근거 없는 비판을 해서 여성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첫인상에 더치페이하지 않는 여자나 남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여성은 김치녀라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여성혐오에 대한 새로운 움직임,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여성혐오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구호를 내세운 사람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메르스 갤러리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의 갤러리 중 하나인 메르스 갤러리는 ‘메르스 의심환자 여성 두 명의 격리 거부 사건’으로 빚어진 여성혐오 여론에 반발해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갤러리로 그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메르스 갤러리를 남성과 여성이 뒤바뀐 세상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본따 ‘메갈리아’이라고 칭해지기 시작했다.
메갈리아 측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미러링’(mirroring)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 미러링은 일상적으로 자행됐던 여성혐오표현을 성별만 바꿔 고스란히 반사시키는 것이다. 그 예로 김치녀 대신 한남충(벌레 같은 한국남자), 삼일한(여자는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 대신 숨쉴한(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때려야 한다) 등이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운영진은 온라인에서 메갈리아의 행위는 기존에는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았던’ 여성혐오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는 현재 몰카 근절 캠페인, 각종 기부, 여성혐오 광고 보이콧, 여성 범죄 관련 법안·소라넷 청원 서명 등 현실 속 여성혐오에 끊임없이 제재를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러링으로 여성혐오가 줄어들진 않겠지만 충격요법으로써 사람들에게 여성혐오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는 사회적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발생했던 성 담론은 주로 남성집단에 의해 여성 비하 단어가 유포되는 등 일방적인 젠더권력체계에서 기인한 방식으로 자행됐다는 것이다. 엄씨는 “여성 혐오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어려웠다”며 “메갈리아의 미러링이라는 충격요법은 온라인의 현실을 성찰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도 여성혐오가 팽배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에 대진대에는 “나는 김치녀입니다”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13학번 김치녀라고 밝힌 대진대 학생은 “여성혐오가 자연스럽고 당연해질 때까지 사회는 입을 다물고 방관해왔다”며 “더 예민하게 불편함을 제기하고 더 나쁘게 싸워도 괜찮다”고 여성혐오에 문제의식을 갖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한신대에도 같은 이름의 대자보가 붙었으며, 작년에는 고려대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대자보가 부착됐다.
남성 중에서도 여성혐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남성 주의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미국 UC 버클리대(UC Berkeley University) 이예찬(24?남)씨는 본인 SNS 계정에 여성주의적인 생각을 담은 글을 게시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이미 기득권층에 속한다”며 “미국에서는 중?고등학교부터 소수자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으며 대학생 때는 교양수업을 의무로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한국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위험수준의 적정선을 지켜야” vs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수단”
일부 사람들은 ‘혐오에 대해 혐오로 맞서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는 이유로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본교생 ㄴ씨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을 깨우치게 하는데 기여했지만 목적과 수단을 구분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미러링이 남성들도 혐오성 발언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는 ‘수단’일 때는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과도해져 혐오성 발언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미러링도 위험수준을 넘는 경우가 많아 여성혐오의 불씨를 키우는 역할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성들에게 미러링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임시방편으로라도 깨닫게 했다면 그 목적이 달성됐다고 생각한다”며 “미러링이 또 다른 여성혐오를 낳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역효과로 인해 미러링의 정당성이 상실된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운영진은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이에 저항하는 약자들의 발화라고 주장했다. 미러링이 불쾌하고 자극적이었다면 여태껏 자행됐던 폭력적인 여성혐오단어들이 그만큼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었다는 것이다.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관계자는 “남성혐오는 단어 그대로 남성에 대한 반감이나 개인적인 혐오를 의미하지만 여성혐오는 여성 집단에 대한 타자화, 성적 대상화, 폭력, 숭배 등 사회구조적인 여성멸시를 의미한다”며 “여성과 남성이 가진 권력이 다른 상황에서 미러링은 현실에서 남성을 구조적으로 억압하는 차별적 기제로 작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여성혐오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성 담론을 다루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씨는 “한국 사회의 성별 갈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성 대결구도가 아닌 구조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특정 여성, 남성을 혐오하기보다는 현재 한국사회의 성 역할과 고정관념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갈등을 빚고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