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감나무에 감이 두 접이나 열렸다. 주렁주렁 열린 감을 보며 부러워하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는 것이 마냥 즐겁다. 우리 집 감나무는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유독 예쁘다. 감나무의 푸른 잎과 말랑해지며 점점 붉어지는 대봉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시다. 우리 집 감나무는 마음까지 예쁘다. 화단에 과일 껍질만 놓았을 뿐인데 달콤한 홍시를 해마다 이 무렵이면 우리에게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한아름 안겨주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감나무는 나를 닮아 어느새 스무 살이 되었다. 내가 우리 집으로 이사 온 뒤 바로 심었다. 그렇다. 감나무와 함께 우리 가족은 우리 집에 뿌리를 내리고 추억을 쌓아왔다. 감나무가 자라는 마당, 상추를 심어 놓은 햇살 좋은 옥상, 어린 시절을 함께한 강아지의 집, 그 강아지가 묻힌 화분, 동네 친구들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기 위해 그렸던 바닥에 낙서까지 우리 집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요즘 들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 집과 우리 집에서의 추억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동네소꿉친구들이 하나 둘 집을 허물고 동네를 떠나가고 있다. 친구들이 떠난 자리는 낯선 빌라들이 대신 하고 있다. 동네 친구들을 닮아, 또 어린 시절 우리 웃음소리를 닮아 개구지게 낡아가던 동네의 집들은 “깨끗”한(하다고 여겨지는) 신식 빌라들로 대체되고 있다. 앞집 할머니의 희망이 되어주던 인력거도, 하교 시간이면 뽑기를 하는 친구들로 북적이던 할아버지의 문방구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 공사장이 늘어가는 동네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며칠 동안이나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꿨다. 그 꿈은 우리 집을 부수고 이사를 가게 되는 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형태의 집이지만 내겐 낯설었다. 나의 집과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내게는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나를 반기는 달맞이 꽃도, 좁지만 알찬 마당에 심어진 부끄러운 듯 익어가는 토마토도 없는 곳이었다.
우후죽순 지어지는 똑같은 모양의 집들을 보면, 우리는 장소에 담긴 기억을 잊어도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작아진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아가 추억을 향수하는 우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한다.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바뀌어가는 획일화된 도시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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