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디오 입문은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을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한두 번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DJ가 내 문자라도 읽어주는 날이면 상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라디오는 하나의 안식처 같았다. 성적이 떨어져서 엄마에게 혼이라도 나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DJ에게 하소연을 했고 친구와 싸우면 화해하는 방법을 물어보곤 했다. 대학교 합격 발표 전날에도 DJ에게 문자를 보내 함께 기도해달라고 했고 합격 발표가 나던 날 감사인사를 하기도 했다.
오프닝 시그널 음악과 함께 DJ의 음성이 시작되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듯이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수많은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막을 내렸고 나는 수많은 DJ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한명, 우리들의 외로운 밤을 함께해준 DJ가 떠나간다. 라디오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청취자들에게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타블로가 <꿈꾸라> DJ자리를 내려놓는다. 라디오가 전부였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DJ가 내쉬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파를 통해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사람들은 라디오 대신 팟캐스트를 듣거나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본다. 밤 12시면 낡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춘 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유를 데우던 어린 중학생 소녀 역시 사라진지 오래다.
과제와 아르바이트 등에 치여 라디오를 듣기는커녕 자정이 되어도 집에 들어가기 어려운 하루. 비를 피하기 위해 무심코 탄 심야버스 차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라디오 DJ의 음성이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나가다가 “안녕, 듣고 있어요?” 라고 되묻던 DJ의 목소리에 나는 한순간 위로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딱히 특별한 의미가 없는, 라디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인사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를 짓누르고 있던 일상의 짐이 사라지고 오로지 나와 DJ 둘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유희열이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뱉는 언어나 문장에 많은 사람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는건 착각이라고. 크로스 카운터펀치 역할을 하는 건 여백. 문장의 행간이라고. 여백에서 짓는 표정과 뉘앙스, 그리고 무드. 이러한 행간이 그 문장을 폭발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버스 안의 적막을 가로지르는 DJ의 음성을 들은 순간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툭 내뱉은 한마디처럼 라디오에는 낭만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여백이 있다. 오늘날 유행하는 미디어가 언어나 완전한 문장이라고 한다면 DJ가 읊조리는 한마디 말 속 행간과 숨결이 하나의 낭만이 되고 공감이 되고, 지친 하루의 위로가 되는 것이다. 쉴 틈도 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음악과 목소리라는 청각적인 요소로만 인간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매체가 라디오 말고 또 존재할까. 슬프면 행복해야 한다고, 아프면 일어서야 한다고 매일같이 소리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슬프면 더 슬퍼해도 된다고, 아프면 조금 쉬었다 가도 된다고 위로하는 DJ의 목소리는 어쩌면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만큼은 집에 돌아가 라디오를 켜보자. 핸드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도 좋고 옷장 안 깊숙이 박혀 있던 먼지 쌓인 탁상용 라디오도 좋다. 열두시, 새벽이 찾아오는 시간에 주파수를 맞추고 설렘에 두근대던 여중생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DJ는 그때 그 시절과 똑같이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다. “안녕, 듣고 있어요?”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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