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위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시간에서 벗어나 각자 삶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아, 본지는 본교 출신 귀농인을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요리연구가로서, 농산물유통업자로서 그리고 탈핵운동가로서 농촌에 뿌리내린 삶, 그리고 경제의 논리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유기농 먹거리 전하는 요리연구가 윤혜신씨
윤혜신(기독·88년졸)씨는 2004년 충청남도 당진군으로 내려가 밥집을 차렸다. 이 시골밥집의 ‘오너쉐프’인 윤씨는 매일 채취한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당진의 토양에서 나는 제철재료를 사용해 직접 담근 장과 김치, 젓갈과 발효액 등으로 건강한 한식을 차려내는 것은 지난 12년간 지켜온 윤씨만의 신념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요. 이건 그 자체로 깊은 감동과 충족감을 줘요. 흙에 씨앗을 심어 작물을 키우고, 그 재료로 요리를 해 밥상에 올리기까지 모든 일을 제 스스로 해내니까요.”
농촌의 삶은 윤씨를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바꿨다. 모든 일이 분업화된 서울과 달리 농촌에서는 생활의 전반을 직접 계획하는 과정의 모든 일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살려면 적어도 열 개의 직업이 필요해요. 농사꾼, 목수, 정원사, 요리사…. 하나하나 제 손으로 힘들여 이뤄내야하죠. 내가 만든 나무의자, 내가 쌓은 돌담, 내가 심은 꽃들에는 제 각각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요.”

 도시 생활이 소비와 경쟁, 분주함의 연속이었다면 시골의 삶은 생산과 주체성, 계절에 발 맞춘 시간과 삶의 여유로 가득했다. 봄과 여름엔 가지각색의 꽃과 나무, 농작물을 심고 가꿔 가을엔 거둬들이며 겨울에는 조용한 휴식을 즐겼다.

 귀농 후 지금까지 윤씨는 농작물에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농경지를 1년 휴경해 땅을 쉬게 한다. 흙의 미생물과 벌레들, 건강한 잡초가 같이 자라는 자연농법이 사람에게도 이롭다는 생각에서다.

 “직접 기른 농작물은 작고 벌레 먹고 꼬부라지고 흠이 있지만, 그 싱싱한 맛만은 가히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에요. 벌레와 풀을 죽이는 관행농법은 결국엔 땅과 공기와 사람마저 해쳐요. ‘내가 곧 밥이고 밥이 곧 하늘’이라는 우리네 동학사상처럼,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오염된다면 나와 하늘이 같이 무너지는 것이겠죠.”

  농부이자 주방장인 동시에 요리연구가로 활동하는 윤씨는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요리책과 수필집을 9권 냈다. 매달 본인만의 음식 이야기를 잡지에 연재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요리수업에서 강습을 진행하기도 한다.

 “밥은 단순한 먹거리, 영양의 차원을 넘어서요. 밥은 오래된 인류 생존의 법칙이자 자기애의 시작이죠. 우리 전통의 소박한 밥상은 곧 나 자신, 나아가 자연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이에요. 늘 그런 건강한 밥상을 차리자는 것이 제가 가진 철학이자 목표죠.”

△농촌과 도시의 상생을 꿈꾸는 ‘생생농업유통’ 김가영씨
김가영(사회·05)씨는 농촌과 도시 사이를 잇는 유통업을 한다. 김씨는 ‘생생농업유통’과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의 대표이자, 산나물 밥집 ‘소녀방앗간’의 이사다. 김씨는 올해로 10년째 유통일을 하고 있다.

 김씨는 대학교 2학년 때 농촌활동(농활)을 계기로 농촌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농활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깊이 공감하는 한편, 도시의 생활에 맞춘 농산물 유통 구조에 문제점을 느꼈다. 그리고 직접 유통일에 나서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결심했다.

 “어릴적부터 시집살이를 겪고 지금껏 밭일을 해 먹고 살면서 농촌 할머니들은 평생 빼앗기기만 해요. 정당한 대가에 대해 유통업자들에게 제대로 요구도 못해보고요. 내가 그동안 도시에서 먹고 누리던 것들이 여기서 비롯됐다니, 할머니들한테 미안했어요. 이때부터 할머니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죠.”

 김씨는 도시의 소비자들의 요구만 충족시키는 일방적 거래가 아닌 농촌과 도시의 활발한 소통과 상생을 추구한다. 농민과 소통하는 유통업으로 자연과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보통의 농업유통은 도시에서 시골로 빈 트럭을 내려보내 농작물을 가득 실은 트럭을 올려보낸다면, 김씨의 트럭은 사람과 배움 그리고 문화를 실어 시골로 내려보낸다.

 “시골에는 배우고 싶어도 맘껏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시설도 인력도 모자르다보니 의료에 취약한 계층도 많구요. 시골의 농작물을 가져다 팔면서 도시로부터 문화나 교육 등 지원활동을 하고 있어요.”
김씨는 FTA협정, 거대 농업회사의 횡포 등 농업시장이 직면한 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농촌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현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가까운 것들부터 같이 으쌰으쌰 살면서 준비해야해요. 결국 어떤 경제의 논리보다 사람이 먼저니까요.”

△‘지역 주민이 바로서는 삶’, 탈핵운동가 박혜령씨
박혜령(법학·92년졸)씨는 1996년 경상북도 구미로 내려가 귀농 생활을 시작해 2002년 영덕으로 이주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박씨는 먹거리를 직접 길러 먹는 자립적 삶을 위해 귀농했다. 삶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한 ‘먹는 문제’에서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했지만,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도시의 삶은 나와 맞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가장 기본의 중요한 가치를 좇겠다고 결심했어요.”

 박씨는 현재 녹색당 탈핵 특별위원회에서(탈핵 특위) 활동하고 있다. 탈핵 특위는 영덕에서 추진되고 있는 핵발전소 건립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힘든 농사일을 하다보면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위대한 자연의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본인 의지와 머리로 하는 일이 대부분인 도시 생활과는 달라요. 자연을 도시의 논리로 바라봐선 안돼요. 자연의 커다란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자연과 지역 주민의 삶이 바로서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주변환경을 무작위로 훼손하는 사업들이 무분별하게 시행되는 것에 반대한다. 2010년 영덕 핵발전소 유치 문제가 불거진 때, 박씨는 자신의 터전인 지역사회를 위해 직접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색당 탈핵 특위는 현재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핵발전소 건립에 맞설 찬반주민투표를 준비중이다. 10월13일 출범한 영덕 핵발전소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11일(수)~12일(목) 주민투표를 시행할 예정이다.

 박씨는 농업과 개발문제 비롯한 농촌 사회의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농촌 지역의 문제는 곧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우린 누구나 매일 세 끼 밥을 먹고, 매일 눈을 감기 전까지 전기를 켜고 살고 있으니까요.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가 도시의 불을 밝히고, 이곳의 노인분들이 허리를 못 펴고 농산물을 지어 도시로 공급하고 있어요. 농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와 상관 없는 ‘그들’의 일이 아닌, 내 삶과 직결되는 ‘나’의 문제로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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