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가 되어버린 양심과 사유의 책임
동그라미가 되어버린 양심과 사유의 책임
  • 유가환(사회·13)
  • 승인 2015.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유하는 태도가 만드는 양심사회

 초등학생 때 도덕 교과서에서 '양심'에 대한 인디언의 구전 이야기에 대해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 내용에 대해서 요약하면, 아이 시절 잘못을 할 때 마음이 아픈 이유는 ‘세모인 양심’이 자꾸 모서리로 마음을 찌르기 때문이고 어른이 되면 그 콕콕 찌르던 모서리가 다 닳아서 양심이 동그랗게 되어버려, 결국 잘못을 하고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들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양심은 계속 어기다보면, 그 찔림조차 잊고 어느새 내 머리는 내가 비양심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다른 이유를 만들어낸다. 합리화의 내용은 이렇다. '그건, 어쩔 수 없었어.'라는 것이다.

 즉,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상황적 귀인을 하는 것이다. 상황에는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언급했던 각자의 '직업'과 같은 상황이나, 복종해야 하는 '권력' 아래에 있는 상황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상황 속의 인간'이고, 자신이 그러한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거대한 '상황', 즉 사회 안에서 자신이 타고나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들을 해야 하는 상황에 종종 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행위자에게 상황적 귀인을 쉽게 만든다. 나는, 그저 나치의 명령을 받은 거야. 어쩔 수 없었어. 나는 그 사회에서는 맞는 행동을 한 거야. 라고, 본인이 그 행동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저 아래에 묻어둔 채로.

 물론 상황적 귀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면 죄책감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들이 어떤 사회 구조의 영향을 받은 행동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며 이를 감안해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 하지만, 일정한 행동에는 사회의 책임도 있지만 개인의 책임 또한 수반된다. 어떤 개인의 행동이 100% 타의나 상황에 의한 행동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생명의 위협이 가해진다거나 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개인은 철저히 사회구조에 속하는 구성원이면서도, 역시 그 사회구조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즉,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향을 줄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 사유하지 않고 그저 들리는 대로만 행동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포기한 행동이다. 물론, 잘못된 사회구조는 항상 개인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구조화하며 생각하지 말라고 종용한다. ‘생각 없이’ 그저 편하게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어쭙잖은 양심’ 같은 것은 잠시만 무시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과 비판의식 없이 기계처럼 살기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책을 펴보면, 인간의 사유가 이루어낸 빛나는 성과들이 존재한다. 식민지배 하에서 일제 치하에서 저항하고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했던 독립운동. 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중과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고, 투쟁하여 이루어낸 민주화. 모두가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사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낸 성과들이다. 사유하지 않았던 나치 정권 하의 아이히만은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다. 그가 나치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가? 아니다. 그는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지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무사유’의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