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본 리더십
한글로 본 리더십
  • 남미래 기자
  • 승인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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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통한 리더십이 성공적인 개혁을 이끈다

 올해는 한글날이 569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해다. 한글날은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이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고 세종의 위대함을 마음에 새기는 중요한 날이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문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 각국에서 문맹퇴치사업에 가장 공이 많은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의 이름도 세종대왕상인 점만 보아도 한글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위대한 문자인 한글이 탄생하게 되기까지, 세종의 빛나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전, 선조들은 말은 있었으나 이를 적을 글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은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차자 표기법을 이용해 표기했다.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기가 어려웠고 한문과 우리말에도 차이가 있어 일반 백성들이 글을 익히기 어려웠다. 이를 문제시 여긴 세종은 우리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지배층은 한자가 기득권의 기반이었으므로, 쉬운 훈민정음 창제에 큰 반발을 일으켰다. 명분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였다. 하지만 세종이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하며 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인 결과, 한글이라는 위대한 유산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혹자들은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시켜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세종실록이나 훈민정음 해례의 정인지 서문만 찾아봐도 훈민정음 반포까지 세종의 공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은 한밤중에 궁녀를 불러다 놓고 여러 소리를 내도록 시킨 다음, 입과 혀 그리고 목구멍의 모양을 살펴보는 등 솔선수범하여 훈민정음 창제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세종은 한글창제기간 동안 28차례나 천문대를 방문하여 한글창제과정에서 천문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등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세종 집권시절, 임금이 신하와 국정을 협의하던 경연(經筵)이 활발했다. 세종은 경연을 통해 신하들을 불러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으며 적극적으로 신하의 의견을 묻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세종은 반대하는 학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성실하고 근면한 독서와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위해 신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의견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노력을 보였기 때문에 한글이라는 위대한 유산이 탄생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그 당시 큰 개혁이었다. 백성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세종은 끊임없는 소통을 일궈냈다. 이로써, 많은 학자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한글이라는 위대한 유산이 탄생할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고치고 개선하려는 의도가 좋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거부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이다. 소통없이 이루어진 개혁은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책결정에 있어서도 세종이 보여주었던 소통의 리더십을 배워야 할 때다. 정책결정자들은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반대 측을 설득하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전문성을 키우며, 열린 태도로 다양한 의견을 받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화합의 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