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학창시절에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하얀 노트 위에 파란색 잉크로. 그 때의 감각을 떠올려본다. 글을 쓸 때의 마음은 여일하다. 즉 초심이다. 과거를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백지상태(tabula rasa)의 마음! 물론 기억을 지우겠다는 마음은 아니고, 외려 기억을 정리하는 마음이다. 아, 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느끼고 설렜던 적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하여튼 그 새로운 오늘의 느낌이 들 때가 바로 글을 쓰고 싶어지는 때였다. 새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인지 당시 나는 전날에 썼던 일기는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매번 노트를 낭비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억누르면서 전날에 썼던 면을 덮고 새 면을 펼쳤다. 그 위에 세상을 심판하고 나 자신을 단죄하듯 펜을 꾹꾹 눌러 썼던 감각을 내 손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간 세상은 엄청 변했는데, 그 감각에 대한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일기에 쓴 것은 일상의 기록이라기보다 철학적 성찰이 대부분이어서 나중에 읽어보면 일기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날 있었던 일의 기록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내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기라고 할 것도 없이 철학노트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성찰을 유발한 것은 내가 나날이 겪고 부대끼는 세상이었다. 내 일기는 세상에 대한 관찰에 더하여 세상에 대한 분노, 울화, 그리고 나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했다. 군사독재 유신시절이었으니 현실이 더 암울했다. 물론 쌍용차와 세월호 등이 가슴을 짓누르는 오늘의 현실이 그때보다 더 밝아진 것은 아니다. 모든 시대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절망과 희망, 자유와 억압이 있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불가능하다.

 하여튼 내 일기는 매일 쏟아내는 분노와 울화를 받아내는 그릇이었다. 언젠가 일기에 적는 그런 글들이 스스로 역겨워지기도 해서 한때 일기를 끊기도 했다.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채 늘 불평만 늘어놓는 나 자신이 싫어진 것이다. 마치 늘 흥얼거리면서 그렇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언젠가 역겨워지듯이 말이다. 「진달래꽃」(김소월)은 이 심정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러다 한참 뒤 나는 연애 경험을 했다. 그런데 그 경험에 빠져들수록 나는 이중 구속(double bind)에 걸려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즉 한 사람과 같이 살면서 추운 세상을 녹일 온기를 주고받으며 구속된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매일 나의 익숙한 고독에 불을 켜며 살면서 자유로울 것이냐는 선택 앞에 놓여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은 고독할 때 생겨난다. 그런데 고독이 사라지면 몸과 마음이 바빠지면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사라진다. 그 고약한 선택지 앞에서 나는 고독과 이별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선택하든 잃어버리게 될 것이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으면서 평생 화해시킬 수 없는 보편적인 갈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이중 구속을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 제3의 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고독과 자유를 택하든 함께 하는 삶과 구속을 택하든 결국 삶이란 고통스런 오디세이인데, 사람들이 그 고통에서 쉽게 해방되어도 이상하고, 그 고통이 견딜 만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서 삶은 그 견인을 견디면서 나아가고 그 견인이 풀어질 때 비로소 손을 놓는다. 손을 놓으면서 모두가 해방되고 모든 것이 화해한다. 그것이 바로 모든 생명의 내재적이고 무의식적인 목표인 자연사(自然史)일 것이다. 삶은 그래서 결국 기다림이고 견딤이고, 또 그것이 사랑과 동정심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되 서로를 놓아주고 자유를 존중하고 행복을 기원해주는 삶은 인종, 나이, 계급, 성별을 초월해서 가능할 것이고 또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델은 그처럼 쉬우면서 어려운 모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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