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관심, '나'가 아닌 것에 대한 관심

  지난 8월20일, 북한군은 경기도 연천에 포격 도발을 해 오며 한반도에 팽팽한 긴장 상태를 조성했다. 당시 나는 뉴스를 듣고 정말 놀랐었는데, 이는 물론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군복무 중인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어 초조하게 기다리던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았지만 그 날 남자친구는 전투 준비 상태로 있어야 했기에 서로의 목소리만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북측에서 전방으로 군사 배치를 하고 있다는 속보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며칠 뒤 남과 북은 3일 간의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었고 남북관계는 안정을 찾았다. 이후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당시 정말 전쟁이 날까봐 걱정되었다는 말을 하자 친구는 본인은 안전 불감증인지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실제적인 상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나로서는 그 사건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었기에 친구의 대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의 생각이 이해가 됐다. 나에게 역시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보아도 저것이 ‘나’와는 관계가 없으리라는 모종의 믿음이 있었다. 즉, 우리는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들려오는 주위의 이야기를 쉽게 ‘타인’의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마음대로 규정짓고는 한다.

  결국, 지난 남북관계의 악화 사건은 단순히 남자친구가 군인이기 때문에, 즉,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나’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남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간은 지극히 ‘나’ 중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살아가기에 타인의 가십에 대해 가볍게 듣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의외로 타인의 이야기를 쉽게 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까?

  타인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자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나’ 중심의 사고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혼자서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특성과 동시에 사회적인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달하여 인간이 점점 기계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고 인간 사이의 소통이 점차 줄어들고, 이로 인해 오히려 나 혼자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여 인간은 점점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기계는 인간의 사유하는 능력마저 앗아가며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이 직면하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사유를 바탕으로 한 소통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록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가는 사회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나’가 아닌 것에 대한 관심을 진지하게 기울여보는 것은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데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끊임없는 만남으로써 마주하는 ‘타인’들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보다 더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소통들이 하나하나 모여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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