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어디에 있더라도 있지 않을게

   한여름의 더위가 끝나기도 전에 중학교 동창이 졸업을 했다. 그날의 술자리는 친구의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결정된 중학교 동창은 우리들의 히어로였고 하나의 믿음과도 같았다. 누구보다 절실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대학생활을 보냈기에 그녀의 대학생활 마침표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려던 참이었다. 축하와 부러움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할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취했던 건 아니다. 분명 얘는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요컨대 울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두렵다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화가 났다. 청년실업시대.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이십대 젊은이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학위서와 합격통지서를 동시에 쟁취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무서워하다니. 있는 사람이 더 한다는 생각이 퍼뜩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우는 아이 앞에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기에 괜히 소주만 잔뜩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두려워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니 하반기 인턴쉽을 위해 쓰다 만 자기소개서가 문득 생각이 났다. 세수를 한 후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키고 화면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따라 내가 쓴 글을 읽어보았다.

  자기소개서에 나 자신은 없었다. 휴일에는 바둑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락 페스티벌에 가는 것을 좋아하며, 책장을 빼곡히 채워 넣을 정도로 일본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과 아빠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존경한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대신 자기소개서 속의 나는 책임감이 있으며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끈기가 있으며 도전 정신이 강하다는 말 뿐이다.

  내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시하게 거짓말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 간 찾아오는 무력감. 영화 <월플라워>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내가 비참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 난 살아있는 거야.” 눈앞의 자기소개서에 비참함마저 느낄 수 없다면 나는 죽어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한 나 자신은 어느 곳에서 숨을 쉬고 있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나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에 익숙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가고 풀벌레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자소서는 내가 도전정신이 강하다는 부분에 멈춰있다. 언젠가는 취업을 위해 다시 컴퓨터를 키고 자판을 두들기며 거짓말을 써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명 그때도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은 답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아니 이제 곧 나는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이분법적인 결과론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라는 모노크롬의 틀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두렵다던 내 친구 역시 지킬 수 있는 만큼 친구 자신을 지켰으면 좋겠다. 거짓말로 얼룩진 전쟁 속에서 방패도, 갑옷도 줄 수 없지만 대신 나도 너와 같다고. 나 자신을 잃어버릴 생각에 두렵다는 말을 해줄게. 브로콜리 너마저가 부릅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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