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 끝에 피어날 찬란한 무지개를 기다리며

  채플 날짜나 보려다 여기까지 온 당신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바쁜 당신과 어렵게 만났으니 당신 얘기를 해볼까 한다. 스무 해를 갓 넘긴 생을 살아내고 있을 당신은 여름의 한창 때에 방학을 맞이했다. 무더위도 함께 맞이했다. 높이 치솟은 온도라는 구실을 스스로 내세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괴로웠을 것이다. 해가 져도 내리쬐는 볕을 욕하며 해야만 하는 일들을 묵묵히 해냈을 수도 있다. 도망치고 싶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남들 다 하는 일이기에 진저리치며 했다. 도리질치며 못 본 체도 해봤다. 똑바로 갔든 모로 가다 주저앉았든 마음은 괴로움으로만 가닿았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내빼고만 싶었다.

  무엇에 쫓겼는가. 당신이 꾸려가야 할 남은 생이 불안정의 연속일 것 같았는가. 무수한 빌딩들 중 당신이 있을 자린 없어보였는가. 세상이 내어준 길은 없을거라 생각했는가. 무슨 연유건 무언가에 쫓기는 당신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에 하루를 쪼개고 쪼개 썼다. 모아지는 것은 종내 보이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어제는 옳은 짓이었는데 오늘은 그른 짓 같았다. 버텨낼 힘은 조금씩 없어졌다. 하루들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오늘도 실패했단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패배감이 온 몸을 둘렀다.

  왜 이것밖에 안되냐며 자괴하는 당신이 있다.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넬까 싶다. 이럴까 저럴까 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그 말들이 혹여 단어와 단어의 조합으로만 들리지 않을까. 고작 그것들로 당신의 괴로움을 한 가닥이라도 떼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당신 생에 괜한 오지랖을 펴 되려 진창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의 한창 때를 함께 견디고 있다지만 당신에게 달라붙은 괴로움을 셈하진 못하기에 망설인다. 당신에겐 당신만 느낄 수 있는 괴로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오롯이 혼자만 알 수 있는 그런 괴로움 말이다.

  얼마간의 어두움을 지낸 당신이 괴로움을 털어내려한다. 평소 하루를 버텨내는 힘보다 더 큰 힘을 쓴다. 괴로움과 사투하는 당신의 고단함이 먹먹함을 부른다. 힘내라는 알량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불공평한 것만이 공평한 게 세상이라는 혹독한 진실도, 다 잘될 거라는 거짓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태산인데 할 수 있는 것은 티끌이다. 결국, 풀려버린 당신의 손에 주저하는 손을 가만 얹을 뿐이다. 주저함의 온기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의 반지반이라도 전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무섭게 내리는 억수에 조금이라도 덜 젖길 바랄 뿐이다. 조금이라도 덜 앓길 바랄 뿐이다.

  혀 끝을 돌던 별 별 바람이 닿은걸까. 당신이 끝내 괴로움을 떨쳤다. 그 모습에 미안함이 앞선다. 당신에겐 우주보다 무거웠을 괴로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간이 달았다. 그 조바심의 무게를 핑계로 당신의 짐은 조금도 덜어주지 못했다. 사랑한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 그 시간에 마음 한 자리 내어 주지 못했다. 그래서 더 자랑스러운 당신이다. 괴로움의 시간들을 홀로 견뎌낸 것도 모자라 그렇게나 예쁘게 자라주지 않았는가. 지금 바로 그 자리에 있지 않은가.

  이제야 빛나는 당신을 대했건만 이제는 당신을 보낼 시간이다. 숱한 괴로움의 순간을 잘 가누고 이 자리에 와 주어서 고맙다. 아프리만치 차가운 비를 맞고도 몸살 감기 정도로만 앓아줘서 고맙다. 이번엔 글렀다 생각한 당신 생이 실은 누군가에겐 사랑이고 기대라는 것을 알아주어 고맙다. 비가 그쳐간다. 당신의 무지개는 아직 뜨지 않았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