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 중심의 국내 문단에서 퀴어문학을 알리다
이성애 중심의 국내 문단에서 퀴어문학을 알리다
  • 박지은 기자
  • 승인 2015.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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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학 소개 사이트 '무지개 책갈피' 설립자 이보배씨 인터뷰
▲ 퀴어문학 소개 사이트 '무지개 책갈피' 설립자 이보배씨 김가연 기자 ihappyplus@

  “퀴어문학은 연애 이야기만 있지 않아요. 연애와 전혀 상관없이 가족, 취업 이야기 등을 다루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조명한 좋은 작품들이 많아요.”

  한국에 퀴어문학(성 소수자를 다룬 문학)의 존재를 알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퀴어문학 소개 사이트 ‘무지개 책갈피’(rainbowbookmark.com) 설립자 이보배(영문·12년졸)씨다. 이씨는 퀴어문학의 데이터베이스(DB), 리뷰 등을 제공하는 무지개 책갈피를 통해 독자들에게 퀴어문학을 알리고 있다. 이씨를 5월28일 본교 정문 앞 카페에서 만났다.

  이씨는 퀴어문학을 알기 위해 먼저 ‘퀴어’의 의미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퀴어란, 소수자의 입장에서 주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할 때, 고유의 정치적·문화적 의의를 드러낸다. “?퀴어하다?는 것은 이성애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에요. 존재 자체로 세상이 ‘정상’이라 부르는 범주를 뒤흔드는 힘. 퀴어란 그러한 힘을 지닌 일종의 가능성이에요.”

  현재 무지개 책갈피는 약 150편의 국내 퀴어 문학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시·소설·희곡 등 장르도 다양하다. 모두 이씨가 손수 조사하고 탐독해 분류한 것들이다. 약 300편의 외국 작품들도 분류작업을 거쳐 곧 게시될 예정이다.

  퀴어문학에 대한 이씨의 관심은 영어영문학과 학부생 시절이던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읽었던 작품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를 시작으로 퀴어문학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씨. 더 찾아서 읽고 싶었지만, 당시 국내에는 퀴어문학 DB가 존재하지 않았다. 두 권, 세 권 찾아 읽다 보니 그 양이 제법 많아졌다. 수집한 작품 중 혼자 읽기에 아까운 것들도 많았다. 2012년 트위터 계정 ‘퀴어문학봇’(@Queer Literature)을 개설해 운영하다가, 성 소수자 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업기금지원공고를 보고 나서는 더욱 욕심이 생겼다. 선정돼 받은 기금으로 무지개 책갈피를 꾸렸고, 국내 최초 퀴어문학 소개 사이트를 5월15일 세상에 공개할 수 있었다.

  이씨는 좋은 퀴어문학의 선정기준은 당사자인 성 소수자가 읽었을 때 화가 나지 않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일부 작가들이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작품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작품에서는 게이가 약물 중독자로 나와요. 그것이 그 사람의 일면이면 괜찮은데 그게 그 사람 전부로 그려진다는 게 문제죠. 마치 ‘게이=힘든 삶’이라는 공식처럼요. 반드시 긍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성 소수자의 다양한 모습, 일반화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좋은 퀴어문학인 것 같아요.”

  이씨가 말하는 퀴어문학만의 매력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점이다. 사람이나 세상을 이해할 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퀴어문학에서는 특히 사람 냄새가 구체적으로, 입체적으로 난달까요? 사람들 모두, 여러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잖아요. 대학생인 동시에 딸인 동시에 이성애자인 사람과 같은 식으로요. 이런 다양성을 퀴어문학에서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 이씨는 퀴어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 섣불리 퀴어를 다루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소수자를 소재로 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성 소수자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간혹 어떤 작품은 작가의 말로 ‘그들의 삶이 개선됐으면 좋겠다’, ‘힘든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밝히기도 해요. 저는 이걸 ‘선자적 사명감’이라고 지칭해요. 작가로서 퀴어들을 개선시킨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고 그걸 과시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국 문단에서 퀴어문학이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높다. 이씨는 퀴어문학을 주요 장르로 다루지 않는 우리나라 문단 상황을 이성애 중심주의가 근간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문단에 인정받은 작품이 아니면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공론으로 끌고 오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핑거스미스'Fingersmith)라고 아세요? 영국 작품으로,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상영예정)라고 번안해서 만든 영화의 원작이에요. 이 작가는 레즈비언 역사물만 써요. 이렇게 외국에는 전문 퀴어작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퀴어문학을 잘 알게 되죠. 그러면서 퀴어문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거죠. 반면, 한국의 퀴어문학 전문 작가들은 주로 비등단 작가이며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이씨에 따르면 영미권의 경우 대학에 관련 학과가 있고 퀴어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또한, 외국은 퀴어문학만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가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퀴어문학은 약 150편 정도 돼요. 시, 소설 다 합치면 사실 굉장히 적은 편이죠. 반면, 외국 같은 경우는 약 1000편 정도 돼요. 퀴어문학 전용 서점은 당연히 있고, 전용 도서관까지 있죠.”

  이씨는 국내 퀴어문학이 나아가야 할 점으로 더욱 많은 작품이 등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단 작품의 절대적인 수가 많아져야 해요. 그리고 당사자 작가, 비평가의 수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당사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더욱 진정성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죠.”

  무지개 책갈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에도 퀴어문학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퀴어문학을 모으고 있다고 하면 꼭 질문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국에 퀴어문학이 있긴 있느냐고요. 이런 사람들에게 퀴어문학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어요.”

  이씨는 28일(일)에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축제 참가자들이 퀴어문학에 보다 친숙해질 수 있도록 심리테스트와 퀴즈를 진행할 예정이다.

  “훗날 한국의 퀴어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목표예요. 한국에도 좋은 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