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고민하던 저널리즘의 의미 잊지말자"

 

  ‘초심’. 참 상투적인 단어다. 뻔하고 지겨운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단어의 무게감에 대해서는 항상 동감하게 되는 애증의 단어다. 당연하고 뻔해 잊는 것도 너무 쉬운 그런 단어가, 문득 와 닿는 순간이 있다. 4학년의 반이 저물어 가는, 그리고 편집국장 임기의 절만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이 바로 필자에게 그런 순간이었다.

  이 글을 쓰는 이 날, 필자는 이대학보에 들어온 지 정확히 2년이 됐다. 당시 편집국에서 마감을 하고 있는 선배 기자들을 보며 수습기자였던 필자는 설레는 맘으로 2년 후 쯤에는 저널리즘 수업에서 배웠던 그 이상적인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왕성한 호기심과 주변에 대한 관심으로 온갖 자잘한 사건을 모두 기사로 쓰겠다며 기획안으로 가져왔고, 가져온 기획안의 대부분은 킬(kill) 되는 뼈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고민하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작은 기사를 쓰는 것도 몇 시간을 끙끙대야 했지만, 그래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본 필자의 ‘저널리즘’은 그리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 과제에, 시험에, 취업 준비에, 바쁜 마감까지 함께 해야 하는 상황에서, 초심을 챙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기계처럼 글을 써냈고, 신문을 만들었다. 정신없이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정신을 차려보면 신문이 나와 있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러다 얼마 전, 서울여대 학보의 1면이 백지로 발행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여대 학보는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을 축제를 이유로 수거한 것에 대한 졸업생 143명의 성명을 1면에 싣고자 했지만, 주간교수의 거부로 실지 못했다. 성명을 싣는 일이 ‘중립’에서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해당 교수의 말이다. 백지 발행은 그러한 주간교수의 편집권 침해에 대한 항의의 의미였다.

  학보의 1면이 백지로 발행된 것은 서울여대 학보가 처음은 아니다. 대학 언론의 편집권 침해에 대한 논란도 학보사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해서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서울여대 학보의 백지 발행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편집국장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1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순간 그 ‘초심’이 떠올랐다. 그 단어의 무게감이 필자를 짓눌렀다.

  편집권 침해 논란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그 잘잘못이 너무나도 명백한 문제다. 서울여대 학보가 빠른 시일 내에 편집권으로 표상되는 그들의 ‘1면’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를 부끄럽게 한 것은, 그 비어있는 1면에 담긴 기자들의 ‘고민’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렸던 필자의 초심은 그러한 고민이 만들어낸 저널리즘이 담긴 신문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초심을 되새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초심은 언젠가 자신이 가졌던 강한 의지다. 필자에게 ‘저널리즘’이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묵직한 존재인 것처럼. 다행인 것은, 필자에게는 아직 한 학기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다시 ‘초심’을 말하고자 한다. 고민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2년 전 수습기자의 마음으로 이대학보를 만들 것이다. 훗날 편집국장을 끝내고 돌아보는 날, 필자가 만든 신문이 2년 전 한 수습기자가 그렇게 선망하고 고대했던 ‘저널리즘’을 말하는 신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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