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왕실을 비롯한 일부 지배계층에서 사용한 '백자 명기' 제공=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 청화 안료에 농담을 주면서 문양을 그려 넣은 '백자청화 포도문 호'
▲ 청화 안료를 사용해 무늬를 새긴 '백자청화 국화문 병'
▲ 왕실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의 태를 넣고 묻었던 '백자 태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박물관)이 개관 80주년 기념 특별전 ‘조선백자’ 전을 27일(수)부터 개최한다. 이 전시는 내년 1월30일(토)까지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 1, 2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관람객들은 ▲조선왕실과 백자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 ▲문인문화의 유행 ▲지방백자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라는 주제로 전시된 약 600점의 조선백자를 감상할 수 있다. ‘조선백자’ 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백자 전시다. 본지는 21일 박물관을 방문해 이번 특별전에 대한 설명을 미리 들어봤다.

  ‘조선백자’ 전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도자 흐름을 보여준다. 백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때는 조선 시대다. 15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군 사옹원(왕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과 기타 대궐 안에서의 음식 제공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곳) 산하에 ‘분원’이라는 도자기 제작소가 설치되면서 백자 생산을 위한 제도적인 틀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박물관 입구 오른쪽에 있는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조선 왕실에서 사용했던 백자를 감상할 수 있다. 조선 왕실은 유교적 예제의 실천을 강조했는데, 각종 의례를 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물이 필요했다. 기물을 통해 왕실의 권위와 명분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화려한 용무늬가 새겨진 ‘백자철화 운룡문 호’가 있다. 백자철화 운룡문 호는 궁중 연향(조선 시대 궁중잔치의 총칭)에 사용된 항아리로, 어깨 부분이 넓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다가 바닥 부분에서 다시 넓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철화 안료로 그린 왕실 문양 용이 표면을 한바퀴 휘감고 있다.

  백자철화 운룡문 호 왼쪽에는 ‘백자청화 국화문 병’이 전시돼 있다. 백자청화 국화문 병 표면에는 청화 안료로 그린 국화가 있다. 입구는 좁고 아래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형태다. 청화는 중국이 페르시아 지역에서 수입한 산화코발트를 불에 구워 만든 푸른색 안료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청화 안료를 수입해 사용했었는데, 당시 청화는 금보다 더 비쌌다고 전해진다. 백자에 청화 안료를 사용해 무늬를 새겼다는 것을 통해 이 백자가 왕실 혹은 사대부 집안에서 사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백자에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출생한 아기의 태(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를 좋은 곳에 묻어야 장차 건강하고 귀하게 성장한다고 믿었다. 특히 왕실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태를 좋은 땅에 묻는 안태의식을 치렀고, 이 의식에서 태를 봉안하기 위해 ‘태호’라는 무늬 없는 순백자를 사용했다. 백자청화 국화문 병을 지나 앞으로 조금 더 가면 ‘백자 태호’를 볼 수 있다. 백자 태호는 조선 시대 태 항아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조선 왕실에서 왕녀아기씨의 태를 넣고 뚜껑과 항아리를 묶어 땅에 묻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자는 죽음의 의례에서도 필수적으로 사용됐다. 죽음의 의례에 사용된 그릇 등 생활 용기는 ‘명기’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용기보다 크기가 작다. 명기는 주로 왕실을 비롯한 일부 지배계층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유교적 의례품으로, 묘지에 시체와 함께 묻었다. 백자 태호 건너편에 전시된 ‘백자 명기’는 뚜껑이 있는 항아리와 병, 잔, 잔 받침으로 구성돼 있다. 백자 명기는 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유약이 골고루 퍼져 있고 순백색으로 발색돼 백자 중에서도 상품(上品)에 속한다.

  박물관 입구 맞은편에 있는 전시실에는 조선 시대 문인들의 가치관과 미적 감각이 담긴 백자가 진열돼 있다. 조선 시대 문인들은 이학(理學)과 성리학의 발달에 따라 사물의 원리를 연구하고, 사물 본래의 속성이 가진 상징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인들의 성향은 매조죽(梅鳥竹)과 매죽난국(梅竹蘭菊) 등을 문양으로 담은 조선백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백자청화 매조죽문 호’가 보인다. 백자청화 매조죽문 호는 조선전기 항아리의 전형적인 형태로, 뚜껑은 좁지만 어깨 부분이 넓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항아리 표면을 유심히 보면 두 줄기의 매화 가지와 가느다란 대나무 사이로 졸고 있는 새, 지저귀고 있는 새, 날고 있는 새 등 각기 다른 모습을 하는 새들을 확인할 수 있다.

  백자청화 매조죽문 호 옆에는 ‘백자철화 매죽문 시명 호’가 있다. 백자철화 미죽문 시명 호 역시 조선전기 항아리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항아리 표면에는 매화나무, 대나무 등을 철화(산화철 등을 주 안료로 하고 점토와 유약 등의 보조제와 혼합하여 정제한 후 붓으로 도자기 위에 문양을 그리는 기법)로 그렸다. 2개의 굵은 줄기가 교차하며 휘어져 오르는 매화나무와 꼿꼿이 위로 뻗은 대나무가 대조적이다. 항아리 옆에는 조선 시대 문인 이정귀의 문집 「월사집」에 실려있는 시 일부가 쓰여 있다.

  말은 삼가지만 능히 천하를 드러내고/때에 따라 탁하고 맑음을 따르네./몸이 비어 족히 만물을 담을 만하고/질이 희니 천성이 드러나네.

  2층 전시실에 전시된 백자는 다양한 무늬의 상징성에 따라 분류돼 있다. 장수나 행복 등의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문, 오래 살고 복되길 기원하는 수복자문 등이 그것이다. 전시실 가운데 놓여 있는 ‘백자청화 양각 십장생문 육각 병’의 표면에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학, 사슴, 소나무 등 십장생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십장생 무늬는 도자의 문양으로도 널리 사용됐는데, 도자 표면에 그릴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어 10가지 소재가 전부 새겨진 도자는 거의 없다. 백자청화 양각 십장생문 육각 병은 실제 크기와는 다르게 학과 사슴을 소나무보다 크게 표현된 점이 특징이다.

  양각 기법(문양을 부조 상태로 나타내는 장식기법)으로 무늬를 새긴 백자도 눈에 띈다. 2층 전시실 입구 오른편에 있는 ‘백자양각 매국문 병’은 나뭇가지와 여러 송이의 매화, 잎과 줄기가 달린 국화를 양각 기법으로 표현했다. 특히 나뭇가지에 활짝 핀 매화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 독특한 부분이다. 이는 덕화요(중국 명·청대의 대표적인 백자 요장)를 비롯해 조선 후기 분원 제작품에도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으로, 당시 유행했던 문양이 반영된 것이다. 표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병을 휘감고 있는 매화의 모습이 섬세하고 또렷하게 표현된 점이 인상적이다.
 

  대형 항아리에 포도문을 그린 예는 백자철화 포도문 호가 거의 유일하다고 알려져있다.
2층 전시실 끝에는 이번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인 국보 107호 ‘백자철화 포도문 호’가 자리하고 있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한가운데에 높이 약 53cm의 백자가 놓여 있다. 백자철화 포도문 호의 표면에는 넓은 이파리와 그 사이로 뻗어 내린 포도넝쿨이 그려져 있다. 철화 안료에 농담을 주면서 그려 넣은 문양은 자유로운 붓놀림을 연상하게 했다. 독특한 점은, 대형 항아리를 만들기 위해 항아리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접합했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접합한 부분이 항아리를 굽는 과정에서 틈이 벌어져 생긴 가로줄을 볼 수 있다. 백자철화 포도문 호의 이러한 제작과정은 희귀사례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이에 박물관은 항아리 주변에 의자를 배치해 친구들과 함께 편안하게 앉아 항아리의 미를 느낄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물관 장남원 관장은 “박물관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도자 유물을 한껏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며 “조선백자를 감상하며 조선 시대의 미에 취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실 개방시간은 매주 월요일~토요일 오전9시30분~오후5시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오후7시까지 연장 관람할 수 있으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전시해설=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김주연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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