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화영 기자 hyk22@ewhain.net

  얼룩이 진 거울을 물기 어린 손으로 닦아 냈다. 손자국이 남긴 온도로 거울에 살짝 뿌연 김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빛나고 매끈한 물체에 비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은 창백하고 푸석했다. 조금 솔직해지자. 돌이켜보면, 나는 이십대에도 그다지 눈에 띄는 타입이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이 신조였을 만큼 내성적이고 존재감 없었다. 누군가 와서 인사치레라도 하면, 어떤 말을 건네야하지, 보다는 어떻게 답해야하지, 가 앞설 정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화는 항상 오래 지나지 않아 끊겼다. 상대가 대화를 지속할 열의를 보일만큼 매력적이지도 못한 것이 분명하다. 나의 젊음은 수많은 젊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그다지 빛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진정 꽃이었던 적이 있을까. 나는 지금도 종종 반문해본다. 미지근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안자 밋밋한 이목구비가 잡힌다. 서른 살의 얼굴 위로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만져졌다. 밥도, 국도, 수저도 아직은 따뜻하다. 뚜껑을 열어 간을 본다. 나쁘지 않다. 입술에 고명을 올렸다가 색이 튀는 것 같아 지워본다. 다시 돌아와 볼의 차림을 매만진다. 곧 있음 상을 들 사람이 오겠지, 기다리는 동안 총기는 싸늘하게 식어간다. 수분을 가득 담았다는 보자기로 덮어보아도 피부는 신선함을 잃고 굳어버린다. 나는 지금 빠져나가는 생기를 잡아두느라 애를 쓰고 있다. 이 상의 주인은 누가 될까. 나는 별 탈 없이 오래된 연인과의 결혼에 골인하게 될까. 오목한 밥공기처럼 움푹 꺼진 눈자위를 꾹꾹 누르며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각들로 심란해한다. 수건으로 닦아 낸 얼굴에서는 그제야 발그레 온기가 돌았다.  
(중략)

  “나는 너 그 일,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다. 무슨 프로젝트야, 프로젝트가.”
그의 목소리는 난파 신호를 보내는 배처럼 위태로웠다. 6년을 만난 사이인데도 나는 여전히 그가 어려웠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했을 뿐인데 눈치를 보게 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낱말들은 두루뭉술했지만 날아오는 각도는 비스듬했다. 모나지 않은 것에 맞아도 아프다는 사실을 나는 진철로부터 배웠다. 그가 던진 말들에는 뼈가 있었다. 촌철살인이라기엔 뼈마디가 굵지 않았다. 잔가시처럼 살 틈새로 비죽비죽 파고드는 것들이었다.
(중략)

  실내로 들어오니 따스한 온기가 주위에 모여들면서 긴장이 풀렸다. 나는 책장으로 다가가 가운데 꽂힌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오래된 것 같았는데 먼지 한 톨 날리지 않았다. 대신 종이에서는 유점과 함께 먼지 먹은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책은 테두리가 영자 신문지로 몇 겹이나 포장되어 있어 새 옷을 입은 듯 깔끔했다.  
“책을 여러 번 읽으시나 봐요.”
건넨 말에 앙리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 다가왔다.
“혹시 내 책 읽어봤어요?”
책을 다시 책장에 끼워 넣다가, 문득 옆에 놓인 앙리의 백색왜성에 눈길이 갔다. 차마 아니요,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객쩍게 고개를 저었다. 앙리는 다가와 백색왜성을 펼쳐 보였다.
?어느덧 또다시 겨울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등졌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동생은 나를 떠났다. 이제 이 집에는 곰팡이와, 석회가루와 나만이 남아있다.?   
(중략)

  “그래도 같이 할 거죠? 작업.”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목울대에서는 몇 가지 모범 대답들이 회오리 칠 뿐이었다.
(중략)

  “나는 가을마다 꽃을 심어요. 백합을 좋아하지만 그건 봄에 주로 나니까. 아까 본 그거, 백합과 식물.”
“히아신스요?”
“네. 그걸로 대신해요. 대견하게도 그놈은 추운 날이 돼야 꽃을 틔우는데, 분재도 해야 하고 손도 많이 가지만. 꽃이 피고 나면 뭐랄까. 그리움이 걷힌 달까.”
“그리움이라면 어떤?”
“그놈 알뿌리마다 내 과거가 박혀 있거든요. 살다보면 한 명 쯤은 있잖아요. 과거 속에 사는 사람.”
앙리는 간절함이 어린 얼굴로 덧붙였다.
“잊어보려고 노력하다, 노력하다 정 안 돼서. 그래서 왔지.”
나는 무슨 말로 답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히아신스의 알뿌리마다 알알이 박혀있을 누군가의 그리움을 모아 향수(香水)를 만든다면 정말 향수(鄕愁)가 아닐까, 하면서. 그저 그런 공감이 되지 않고자 기를 쓰고 끄덕였다. 그러다가 왠지 모르게 사람이 양파를 까면서 눈물이 나는 이유는 매워서가 아니라, 히아신스 알뿌리를 꼭 닮은 곳에 숨겨두었던 누군가의 그리움이 솟아나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선하는 동네에서도 외진 곳에 살았다. 마을은 뉴타운 지역과 산동네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 근방을 지나치기만 하는 사람도 평지의 어느 횡단보도에 서면 어머, 저 위는 어디에요? 하고 물을 만큼 경계선이 뚜렷했다. 아래가 신설 아파트 단지였다면 위는 연립주택 몇 가구와 허름한 판자촌으로 이루어진 계단 식 언덕이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동생은 세상이 둥글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저기 위엘 봐, 언니. 동생의 손가락 끝에는 주택들이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연정이 말처럼, 세상은 둥글지 않은 것 같았다. 마을은 오각형의 두 변이 맞닿은 부분처럼 애매한 각도로 세워져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도 경계선에 위치했다. 나는 뉴타운과 산동네 사이, 두 마을을 가르는 횡단보도의 끝에 이사를 왔다. 전학 온 첫날, 학교에 가보니 학급의 반 정도는 언덕 위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중략)

  그 날 이후, 어디를 가든지 선하 얼굴을 찾는다. 눈에 들어오면 얼굴 구석구석을 왼다. 유난히 윤기 나는 긴 생머리, 하얀 얼굴과 대조되는 까만 눈썹, 작지만 오뚝한 코, 웃을 때마다 보이는 덧니까지.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정된 암기력으로 간신히 외운 것을 선으로 만들어냈다. 선하의 모습은 게르니카처럼 조각난 파편들이 합쳐지는 과정이었고, 그림은 그렇게 한 장 한 장 쌓였다. 그즈음 알게 된 건, 선하의 덧니가 참 매력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정선하라는 인간을 하나로 집약할 수 있는 별도의 생물체 같았다. 세상을 향해 돌출된 선하의 반항심도, 참을 수 없는 일들에 분개하는 정의감도, 무엇이든지 시작한 건 끝내고야마는 악바리 근성도, 우울할 때마저 튀어나오는 익살맞음도, 모두 그 덧니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선하가 입을 벌리고 재잘댈 때마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그 녀석이 좋았다. 녀석은 참 사랑스러웠다.  
(중략)

  조금 앞서서 걷고 있던 앙리는 속도를 줄여 옆에서 발맞춰 걸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 결혼까지 결심했어요?”
“……”
“한국에서 결혼하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나? 엊그제 뉴스 보니까, 젊은 사람 중에 40퍼센트가 결혼 생각 없다던데. 남자도 남자지만 여자들은 일하면서 애 보기도 마땅찮고, 힘든 일투성이라. 근데 하려는 이유가 뭐예요?”
나는 그냥, 이라고 답하려다가 너무 무책임해 보일까봐 입을 다물었다. 오래 전부터 스스로에게 구해온 질문이었다. 답을 내리기 전에 나이를 먹어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사랑해요, 그 사람?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
앙리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다그침이 섞여있었다. 나는 허를 찌르는 질문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갑작스레 사적인 이야기를 물어오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다. 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어제 진철과 통화를 한 뒤로 궁금해졌나.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이리 격앙된 말투인 거지. 앙리는 본인도 조금 극성맞다 싶었는지 이내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괜찮아요.”
나는 약간 거리를 두고 걸었다. 가까이 다가온 앙리의 어깨가 나의 머리칼에 스쳤다. 계속 고개를 숙이며 걸었더니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보도블록이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글쎄요. 해야 할 것 같았어요. 혼기도 들어섰고, 눈치도 보이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입 밖에 꺼내는 것은 처음이라 살짝 낯간지럽고 이상했다. 
“저는요, 어릴 때부터 견디는 거에 익숙했거든요. 남들은 못 먹겠단 음식도 씹다보면 고소해, 하며 꿀떡꿀떡 삼키고. 피아노에 소질 없단 거 알면서도 체르니 백 번까지는 쳤어요. 그 선생, 겨우 여섯 살짜리가 ‘손에 계란 쥐듯이’의 의미가 어려워 한 번 더 물어봤다고, 애 뒤통수까지 쳤는데.” 
“저런,”
“핸드폰도 있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2G폰 썼어요. 자판은 벗겨져도 외워 칠 수 있으니까. 왜 바꿨냐면, 아무리 배터리를 충전해도 1시간이 지나면 꺼져서. 그래서 바꿨어요.”
“저런!”
“그래도 꽤 견딜 만해요. 막상 쓸 땐.”
“아, 그 정도예요?"
그는 인내심이 퍽 대단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네, 그 정도예요. 그래서 결혼도, 그렇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앙리는 잠자코 듣는가 싶더니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나는 솔직하게 말한 걸 바로 후회했다. 뱉고 보니 내 자신이 더더욱 별 볼일 없게 느껴졌다. 결혼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하기에는 참 맥없는 이유였다. 나의 말 속 그 어디에도 진철에 대한 사랑 같은 건 담겨있지 않았다. 차라리 ‘오래 만난 정 때문에요’, 라거나 ‘그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가 더 나은 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탓할 거면 탓하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앙리는 잠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은 입원해있던 환자들보다도 옅은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연우 씨,”
짧은 순간 그의 표정에 안타까움과 비애감이 스쳤다.
“살면서 그냥 견뎌지는 건, 없어요……” 
(중략)

  있지, 선하야. 그래도 나 그동안 꽤 열심히 살았어. 열심히 산건지, 바쁘게 산건지는 모르겠지만. 성인답게 살려고 노력했어. 매순간 일도 미루지 않고 책임을 다했어. 서울의 콧대 높은 미대생들 사이에서 누가 쓰다버린 캔버스를 몰래 재활용도 해보고, 디자인용 패드를 사느라 온종일 알바도 뛰고, 과대표의 반쯤 강압적인 권유에 의해 미학 동아리도 들고, 거기서 공모전도 나가고, 이 세대 웬만한 젊은이들이 그렇듯 구직난도 겪어보고, 그나마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선배와 만나 연애라는 것도 했어. 적응기가 지나니까, 세월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흘러갔어.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진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어. 어른이 되면, 조금은 달라져있을 거라고. 조금은 의연해져있을 거고, 여유로워져 있을 거고. 전보다는 훨씬 두터워져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어. 그런데 아닌가 봐. 나는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여전히 제자리야. 어쩌면 그 ‘열심히’가 실은 ‘빨리’였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가 계약직 신세에 주눅 드는 이유가, 아직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 이유가, 사랑인지 확신도 안 가는 남자와 결혼을 하려는 이유가.

<심사평>
  총 4편의 장편소설이 응모된 제10회 이화글빛문학상의 특징은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이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삼포세대 혹은 오포세대로 통칭되는 청춘들의 아픔을 그 기원으로부터 고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 기원이 거의 가족의 폭력이나 결손, 죽음이라는 설정이 다소 상투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이 강해 한계점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잘못 채워진 첫 단추’로써의 기능에는 수긍이 가는 설정이었다. 세대론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사로의 확대와 내면적이고 심리적 요인의 천착이라는 양 측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중층적 시각이 요구된다. 기성작가들의 문학보다 늘 새로울 수는 없지만, 더 절실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고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래야 안정된 문장력과 독특한 분위기를 확보하고 있는 올해 투고작들의 공통된 장점이 빛을 바래지 않을 수 있다.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쓰기 위해 기존의 문학들은 반드시 참고돼야 한다.
         
  가령 '노랑과 파랑 사이'에서의 연애이야기가 남녀주인공의 계급 차이나 문화 차이로써의 핍진성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감정이나 취향의 갈등이나 마찰보다는 보다 본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이 강력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 여주인공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백화점 포장 코너에서의 아르바이트와 어떻게 충돌하고, 고급 백수인 아빠와 왜 불화할 수밖에 없는지가 서술이 아닌 사건으로 드러난다면 더욱 설득력 있는 설정이 될 것이다.

  '너의 시간'이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소설이 빠진 함정도 비슷하다. 완벽에 가까운 남자친구와의 만남이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불구화되어 있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이 익숙하면서도 비약적이다. “우리는 혼자이기 위해 태어난다”라는 문장과 “모든 것이 진짜다. 그러니 행복하다”라는 문장 사이의 거리는 엄청 멀기에, 소설 속에서는 촘촘하게 그려져야 한다. 그래야 당위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시간 열차 승차권’이라는 흥미로운 모티프 중심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풀리지 않는 인생의 매듭을 풀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짠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그런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서도 바꿀 수 없기에 현재의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절실한 성찰을 담기에는 시간 열차의 설정이 편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서 흥미를 반감시킨다. 중후반부에서 시점이 교체되는 부분도 계몽적인 주제를 서사가 아닌 설명으로 대체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올해의 당선작으로 결정된 '덧니'는 투고작들 중에서 가장 소설적인 구성과 주제가 돋보였다. 1인칭 독백의 세계가 아닌 3인칭 대화 중심의 세계관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면을 사건에 담아내는 서사적 능력이 가장 탁월했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라는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가정 폭력이나 왕따 문제, 현실타협적인 연애 문제와 잘 결합해서 일상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로 치환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덧니’처럼 ‘구별’ 혹은 ‘차별’되는 특성을 지닌 소수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설득력있게 전달되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들의 관계 변화를 밝히기 위한 설정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수수께끼적 구성이나 완숙한 문장을 통해 끝까지 읽히는 힘을 제공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통찰하게 하는 성장소설이자,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연애임을 알려주는 연애소설이며,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예외적 결단이 타자에 대한 배려임을 일깨우는 실존소설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의식의 깊이와 주제의 입체성을 담보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 정진하여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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