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의 성범죄를 막을 법안 마련에 제동이 걸렸다. 전국 4년제 대학 3곳 중 1곳이 성범죄 통계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은 3월25일 '교수의 언어 성희롱, 성추행 등 대학가 성범죄 문제 개선을 위한 정책이 전수조사 실패로 마련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제출을 거부한 대학엔 본교도 포함돼 있다.

  박 의원은 대학가 성범죄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교육부에 각 대학의 ‘최근 5년간 대학 내 성범죄 현황’ 자료를 3월 요청했다. 교육부는 2월3일~2월17일 각 대학에 성범죄 통계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4년제 대학 197곳 중 본교를 포함해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등 70곳(약 35.5%)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교육부가 각 대학에 요청한 성범죄 통계 자료는 최근 대학 내 성범죄 발생 건수와 이를 이유로 해임된 대학교수 현황이다.

  성범죄 통계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대학은 시기상의 문제,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들었다. 본교 양성평등센터 김진희 연구원은 “교육부 현황조사 기간과 양성평등센터 담당자가 바뀌는 시기가 맞물리면서 제출기한을 놓쳤다”며 “이후에 교육부에서 관련 통계자료를 요청할 경우 자료를 제출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성범죄 통계자료를 익명화해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제3자가 사건 정황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측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박 의원 측에 답변서를 제출한 바 있다.

  반면 서울 시내 대학 중 성범죄 통계를 제출한 학교는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등 127곳이다. 이 학교들은 개인신상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한해 성범죄 통계자료를 제출했다.

  실제로 미국은 대학 성범죄 통계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한 이후 교내 성범죄 발생률이 낮아졌다. ‘대학 캠퍼스의 생활안전 위기관리 체계 연구’(배대식, 2003)에 따르면 미국은 1990년 제정된 연방 ‘클러리법’(Clery Act)에 따라 대학들이 성폭력 등의 범죄 통계를 매년 정부에 제출하는 것이 의무다. 대학에서 발생한 범죄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강력 범죄를 예방하고 학생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캠퍼스 폴리스(Campus Police) 도입에 관한 연구’(이상훈, 2009)에 따르면 클러리법 제정 이후, 다수의 대학이 캠퍼스 폴리스를 채용해 캠퍼스 범죄에 대처하면서 범죄율을 낮추는 성과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교내 성범죄 통계자료는 대학 내 성범죄를 예방 및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범죄 통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성범죄 피해자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잠재적 가해자에게 성범죄가 문제라는 것을 알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성폭력 통계자료는 학내 성폭력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만드는 첫걸음”이라며 “교내에서 어떤 유형의 성폭력이 있었는지 정도의 정보는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교 한국여성연구원 허민숙 연구교수는 “학교가 성범죄 통계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이를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교내 성범죄 예방에 있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본교생 일부 역시 성범죄 통계자료를 공개하고 제공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유연비(사회·14)씨는 “여성의 인권에 앞장서는 본교가 성범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동에서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박 의원은 교내 성범죄 통계를 의무적으로 제출할 법안을 마련 중이다. 박 의원은 “교육부와 대학 당국 모두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통계가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다”며 “대학이 성범죄 통계를 의무적으로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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