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908년 3월8일 1만5000명의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1975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됐다. 본지는 제40회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본교 출신 여성학자 및 여성 활동가에게 학생이 여성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책을 추천받았다. 그들은 책 추천을 통해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

「페미니즘 : 주변에서 중심으로」

벨훅스 지음, 모티브북, 20107월6일, 255쪽, 1만5000원

 

 bell hooks. 미국을 대표하는 Afro-American 페미니스트의 필명(筆名)으로 본명은 글로리아 왓킨스이다. 벨 훅스란 필명을 갖게 된 연유가 흥미롭다. 어린 시절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말썽을 부리던 왈가닥 손녀딸을 다스리느라, 할머니께선 집 뒤 켠 움막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 그곳에 매달아 두셨다 한다. 대못에 동동 매달려 있는 동안 어린 흑인 소녀는 ‘밤낮으로 착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커다란 방울을 선물로 내려주셔서, 그 방울을 목에 달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옛날이야길 떠올리곤 했단다.


  커다란 대못에 매달려 있던(hooks) 어린 시절의 반항적 모습과, 착하게 살면 하늘을 날 수 있는 방울(bell)을 선물로 받게 되리란 허구를 진실로 믿었던 어리석음을 기억하기 위해 bell hooks란 필명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이름을 굳이 소문자로 쓰는 건, 이름 한번 가져본 적 없이 사라져간 흑인 조상들을 잊지 않기 위한 고집의 표현이라 한다.

  벨 훅스가 명성을 얻게 된 첫 저작은 1984년 출판된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이다. 한국에서는 2010년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이중?삼중의 억압과 참혹한 고통을 받아온 유색인종 여성들의 목소리가 통합되지 않는다면, 백인 중산층 여성 경험에 터한 페미니즘 이론은 완성될 수 없다는 입장을 담고 있다. 성?계급?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해온 주변 집단들이 중심으로 진입하게 될 때만이, 주변과 중심 간의 불평등 및 부정의(不正義)가 사라질 수 있음을 설득력있게 논증하고 있다. 여성 집단 내부에도 억압과 차별의 뿌리와 양상이 다중적(多重的)으로 존재함을 예리하게 포착한 역작에, 세계의 독자들이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이제 한국사회에도 이주노동자, 제3세계 유학생, 결혼이민자 및 그들의 자녀에 더하여 새터민, 동성애 및 트랜스젠더 등등 “주변” 집단의 다양성이 점차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벨 훅스의 책은 편견과 차별을 넘어 인정과 공존을 향한 깊이있는 성찰을 통해 독자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함인희 교수(사회학과, 이화리더십개발원 원장 역임)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문학과 지성사, 2014년3월1일, 340쪽, 1만3500원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모멸감을 견디고 버티며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가 박탈되고 제한되는 영역과 순간이 많다. 아직도 고급 외제 승용차의 딜러로 여성이 단 한 명도 채용된 바가 없다는 사실은 2015년 현재도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여성 이전에 한 개인으로 살아가기에도 힘겨운 사회다.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열풍을 일으킨 것은 아직도 갑과 을이라는 구도에서 치욕감과 모멸감을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수많은 미생들이 사회의 주 구성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멸감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캠퍼스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캠퍼스를 벗어나면 당장 마주쳐야 하는 수치심, 모멸감을 예습하여 마음의 맷집을 키워야 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오늘을 사는 여대생의 건강한 의무일 수도 있다.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김찬호교수가 쓴 이 책은 만만치 않은 차가운 현실을 따뜻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교양서라 할 수 있다. 이 책 가운데 deprogramming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나온다. 이미 짜여져 있는 프로그램을 해체시킨다는 의미이다. 모멸감을 주고받는 프로그램을 해체시키고 건강하고 당당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려면 먼저 프로그램의 콘텐츠를 알아야한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가끔 어두운 삶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독을 권한다.

김명숙 변호사(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성평등정책과정 자문위원)

 

「우리들의 목소리 : 아시아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의 현장」

장필화, 이명선 엮음,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5년1월17일, 208쪽, 1만6000원

  이 책은 본교의 아시아-아프리카 여성활동가 교육(Ewha Global Empowerment Program)사업에 참여한 아시아 여성운동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젊은 NGO 여성 운동가들로, 젠더와 환경, 이주, 재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현장을 보고하고 있다.

  이 책은 총 4부 14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부인 <가부장제와 섹슈얼리티>는 방글라데시 아동결혼, 한국의 결혼이주, 네팔의 차우파디라는 월경오염 문화, 인도네시아의 성소수자 운동을 이야기 하고 있다. 2부인 <여성인권과 노동>에서는 미얀마 소수민족 여성, 필리핀의 주거권 투쟁, 그리고 방글라데시 의류공장노동자의 강제노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3부인 <재난과 여성임파워먼트>에서는 스리랑카의 쓰나미  경험과 여성, 필리핀의 자연재해가 야기한 젠더폭력, 그리고 여성들의 재생산건강권 운동, 네팔 지역의 여성리더십 강화 사업을 이야기 하고 있다. 4부 <대안 여성주의 운동>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식량주권운동, 인도 달릿 출신 여성운동가의 활동, 중국 여성운동의 재정치화 전략, 그리고 한국의 성인지적 성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는 ‘아시아’로 범주화된 지역 안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다른 여성문제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동시에 이를 해결하고 변화시키려는 여성들의 노력과 헌신이 얼마나 공통적이고 서로 닮아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지구촌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 깊은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간다. 이 책을 통하여 다양하고 생생한 아시아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현장들을 직접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페미니즘의 눈으로 ‘아시아’를 새롭게 이해하고, 이롤 통해 ‘우리’의 개념을 아시아 더 나아가 지구촌 여성들과의 만남으로 확장시켜 갈 수 있는 비전을 가질 수 있기를 있기를 기대한다.

이명선 특임교수(아시아 여성학센터)

 

「위험한 여성 : 젠더와 한국의 민족주의」

일레인 H.김 외 지음, 삼인, 2001년8월20일, 404쪽, 1만5000원


  거의 15년 전에 나온 책을 소개하려 한다. 오래전 책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여러 가지 쟁점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해 고민하고, 여성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권력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과 통한다. 이 책은 그 권력의 문제를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특정한 이념에 초점을 맞추어서 분석했다. 그 안에는 ‘식민주의’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민족, 민족주의가 여성에게는 무엇인가를 다루면서, 그것이 특정한 남성성을 생산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어느 쪽을 착취하는 위계질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요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고, 또 지난주에는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가 있었다. 여성으로서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에 글을 쓴 선배 여성학자들은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절절하게 그러한 고민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줄 것이다.

정지영 교수(여성학과)

 

「캘리번과 마녀」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갈무리, 2011년11월30일, 432쪽, 2만2000원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는 것은 이제 웬만큼 알려졌지만, 이 날의 정확한 유래는 생각보다 알려져 있지 않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 수만 명이 뉴욕 럿거스 광장에서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유래하는 이 날은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날의 유래를 다시 생각하며 권하고 싶은 한 권의 책은 바로 이탈리아의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교사, 활동가인 실비아 페데리치가 쓴 『캘리번과 마녀』라는 책이다. 이 책은 서구가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할 때 벌어진 수십만 '마녀들'의 처형을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녀는 자본주의 성립시 벌어지는 폭력적인 약탈과 갈취, 공유지의 사유화를 의미하는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 개념을 여성의 몸과 재생산능력에 대한 통제권 상실에 적용한다. 자본주의는 노동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만, 이 인간의 생산과 재생산 즉 출산과 양육, 교육, 그 외 노동력 재생산 비용은 떠맡지 않음으로써 굴러가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여성을 자궁기계이자 재생산노동자로 만드는 대대적인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마녀사냥' 즉, 여성의 몸과 재생산능력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마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한 일련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여성 인권'은 향상된 것 같은데, 여성/여성주의에 대한 혐오는 만연한 이 시절에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여성과 일'이 놓여있는 사회적 맥락, 이것들을 구성하는 힘들에 대한 고민을 포함할 수 밖에 없으리라. 이 책이 미래의 일하는 여성으로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이화인들에게 모쪼록 신선한 충격과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져줄 것이라 기대한다.

김신현경 강사(여성학과,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기획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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