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정 미술감독 인터뷰

▲ 본교 졸업 후 할리우드에서 데뷔한 한유정 미술감독 제공=한유정 미술감독
▲ 한유정 미술감독이 영화 'Little Heroes2(2000)' 세트장에서 동료와 함께 작업중이다. 제공=한유정 미술감독
▲ 비행기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제공=한유정 미술감독

  “‘간절함’이 제가 미술감독이라는 직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에요.”

  할리우드(Holly wood)에서 미술감독으로 데뷔한 지 17년. 한유정 감독(장식미술학과 실내환경디자인·96년졸)은 현재 뉴욕 필름아카데미(New York Film Academy)에서 일주일에 3번씩 강의를 할 정도로 바쁘다. 한 감독은 학생 유학시절 신분으로 ‘Love’(1999)의 미술 총감독으로 데뷔해 할리우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가 미술감독을 한 영화 ‘Better Luck Tomorrow’(2001)는 개봉 첫 주 최다관객 동원, 미국 유타(Utah)주 파크시티에서 매년 열리는 권위있는 독립영화 국제영화제 선댄스(Sundance)에 초청받아 레드카펫을 밟는 쾌거를 이뤘다. 이외에도 그는 다양한 TV쇼, 뮤직비디오나 CF 등에서 미술감독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본지는 2일 미국 LA에 있는 한 감독과 서면으로 인터뷰 했다. 육체노동의 강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여성이 일하기 힘들다는 할리우드에서, 그것도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이 어떻게 타지에서 꿈을 펼칠 수 있었는지 들어봤다.

  미술감독이라는 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한 감독이 중학생 때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 집에서 만난 성악 선생님이 ‘미술 전공이라면 미술감독 해 보는 것은 어떠니?’라는 한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한국에 들어온 전문서적도 없었어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미술감독에 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봤죠.”

  한 감독은 졸업 후 현대종합목재 인테리어 사업본부에서 디자이너로 1년 넘게 일했다. 부모님이 미국 유학을 반대하면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아,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서에서 진행한 주택 목조사업으로 디자이너의 능력을 인정받게 됐으나 오히려 유학의 길에 오르는 것이 망설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이뤄놓은 것을 모두 걷어내고 새로 시작하기가 겁이 났던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회사 내에서 유학을 꿈꾸는 선배와 서로를 격려하며 목표를 바로 잡았다. 결국 입사 1년 후 한 감독은 회사를 그만두고 1997년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석사과정에 입학해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유학 시절을 매 순간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회상했다. “미국에 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IMF가 터졌습니다. 재정이 어려워지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일할 기회가 생긴 후부터는 쉬지 않고 일과 학업을 병행했어요.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하루 2~3시간 이상 잠을 자기 힘들었죠. 체력의 한계를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100% 정신력 싸움이었어요.”

  한 감독에게는 몇 번이나 한국에 돌아가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때 마다 ‘미국에 어렵게 꿈을 가지고 왔는데 무라도 썰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 칼만 뽑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잡았다. 그렇게 조금씩 버텼고,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다음 단계로 가는 문이 열려있었다고 한다.

  외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한 감독은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끊임없는 노력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본에서 모르는 단어를 사전으로 하나하나 찾아가며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한번은 미팅 때 동료가 자신의 일을 잊어버리고선 프로듀서가 책임을 추궁하자 제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못 알아들었다고 핑계를 댄 적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억울했지만 더 노력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죠.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언어나 문화의 장벽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결국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늘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한 감독은 평소 소소하게 돌아가는 일상이나 변화에 대한 세밀한 관심이 일할 때 도움됐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특징을 무대에서 표현할 때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방식의 이해가 없으면 어딘가 어색하기 마련이죠.

  저는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도 사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관찰했어요. 그 덕에 사람 사는 모습이 머릿속에 늘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 같아요.”

  한 감독은 후배들에게 부지런함과 의지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꿈을 꾼다는 것은 꼭 크고 엄청난 일을 계획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두루뭉술하게 꿈꾸지만 말고, 현실적인 명확한 목표와 달성할 의지를 가진다면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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