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의 흥행이 가져온 과학에 대한 관심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길

  얼마 전 영화 ‘인터스텔라’가 갑자기 우리나라에 우주 열풍을 불러왔다. 블랙홀이나 웜홀, 시간지연, 5차원 시공간 등의 난해한 물리학 용어가 일반인의 일상적인 수다거리로 오르내리고 어떤 물리학자는 모든 공중파 방송에 겹치기 출연을 하며 인터스텔라의 물리학에 대해 설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 국가의 공교육체제가 오랫동안 해내지 못한 일을 영화 한 편이 불과 한 달 만에 해냈다는 평이 있을 정도이다.

 
  이 영화는 몇 가지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물리학으로 시작하여 물리학으로 끝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및 관련 현상을 모르고서는 각본의 기본 얼개조차 구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뭐든 다 된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공상 대신 첨단 물리이론과 영화적 상상력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현실감을 극대화하였다. 일반상대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영화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였고 영화 제작 중에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두 편의 논문을 전문 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흥행 면에서는 이 영화가 외국에 비해 유독 우리나라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까닭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시공을 초월하는 가족애가 차가운 우주와 대비를 이루며 절절하게 다가왔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 수준부터 개인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온갖 갈등이 이어지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개개인에게 가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광활한 우주로의 탈출과 인간적 유대관계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가족애가 우리나라 관객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다른 이유로 높은 교육열을 들기도 한다. 블랙홀, 웜홀 등 우주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아이들 교육용으로 극장을 찾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다는 것이다.

  놀란 감독 본인은 우리나라 관객이 과학에 관심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유감스럽게도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다. 물론 정부나 언론을 포함하여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과학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아니다.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관심일 뿐이다. ‘과학기술’이라는 익숙한 용어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 현실에 써먹을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는 과학 연구는 존재가치가 없다. 예외가 있긴 하다.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상에 대한 관심일 뿐이다. 다른 나라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하는데 필요한 겉치레로서 말이다.

  국민들이 과학에 보이는 관심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과학은 삶과 아무 관련이 없다. 오로지 아이의 수월한 대학 진학을 위해 가끔 가족 단위로 극장에까지 가줘야 하는 그 어떤 것일 뿐.

  우리나라에서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교양 목록 속에 철학이나 문학, 역사 등은 들어있겠지만 과학이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다. 과학(아니 과학기술)은 특별한 분야에만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지식이라 그 분야의 전문가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설명들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통합된 과학이론을 이루고 과학적 세계관을 형성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경위야 어떻든 과학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도 누구나 조금씩은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광활한 우주의 작은 변두리에서 인류가 이룩한 지적 성취를.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 어리석은 탈레스, 그 탈레스들이 불과 수천 년이라는 찰나에 알아낸 억겁의 우주에 대한 비밀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발표 100주년인 2015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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