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들과 같은 목표를 보는 리더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필자는 얼마 전 이대학보사의 편집국장이 됐다. 중·고등학교 반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조직의 리더가 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부담감이 이 자리를 택하기까지 가장 고민이 됐던 이유였기도 하다. 한 달, 길지 않은 시간을 일을 하며 점점 더 리더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깨달아가는 시점에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 사건이 발생했다. ‘갑’이 된 필자는 사회가 이를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문제를 보게 됐다.

갑질을 하는 대부분의 주체는 리더다. 이번 대한항공 사건을 계기로 위메프, 홈플러스 등 전국의 갑질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 회사를 이끌어가야 할 회사의 오너가 직원에게 갑질을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 사회의 구성원 중 갑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을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리더의 위치에 있다 보면 구성원들의 고개 숙인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리더가 더 ‘높은’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갑질을 했던 수많은 회사의 오너들 역시 직원들의 고개 숙인 모습을 수없이 봐왔을 것이다. 고개 숙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리더가 가진 것은 권력이지만, 리더가 가져야 하는 것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정의는 ‘집단의 목표나 내부 구조의 유지를 위하여 성원이 자발적으로 집단활동에 참여하여 이를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이다. 필자는 이를 ‘팔로워십(follwership)’이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리더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성원들을 이끌어(follow)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리더의 역할은 고개 숙인 이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개를 들어주는 일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먼 곳의 목표를 함께 바라볼 수 없다. 고개를 들고 같은 눈높이에서 토론해야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갈 때 집단은 발전한다.

리더의 위치에서 같은 눈높이를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와 같은 크기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20명도 안 되는 작은 조직인 이대학보사에서도, 수습기자가 필자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듣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필자는 ‘태생부터 갑’은 아니었기에 조금 더 쉬웠다. 수습기자를 거쳤고, 다른 리더와 함께 일을 해봤기에, 리더가 성원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해주는 것이 조직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필자의 멘토인 한 사람은 필자가 편집국장이 된 직후 이런 조언을 건넸다.

“적어도 국장단 임기 동안 살아오면서 은근히 가져왔던 게으름들이 바깥으로 삐져나오면 안 된다. 개인적 나태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국장단은 스스로를 다그쳐야 한다. 너희들을 따르는 기자들을 자신 있게 독려하려면 그래야 한다.”

여기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성원들을 앞장서 이끌고 독려하는 사람이다. 그들을 내려다보고 그들의 권한을 짓밟는 리더가 있는 조직이 건강할 리 없다. 리더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성원들보다 최선을 다해 조직을 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이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 리더십이 보일 때, 성원들은 리더에게 믿고 ‘권력’을 줄 것이다. 권력이 리더십보다 앞선 우리 사회 ‘갑’들이 만들어낸 결과를 보며 필자는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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