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미래의 약속
불안한 미래의 약속
  • 김혜숙 교수(철학과)
  • 승인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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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지성을 향한 갈망과 새로운 동기의 내재화로 여자대학의 미래를 꿈꾸자

12-13세기에 설립된 영국의 옥스퍼드와 켐브리지대학은 오랫동안 금녀의 공간이었다. 19세기 말에 거튼이라는 여자대학이 세워졌는데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자대학의 곤궁함에 대해 흥미로운 관찰을 하고 있다. 울프 자신은 옥스브리지에 갈 수 없었다. 당시 여자들은 도서관 뿐만 아니라 학교 잔디밭에서도 쫓겨났다. 강제결혼, 아내 구타가 관행처럼 이루어졌던 영국 여성들의 삶은 조선조 여성들만도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대학의 출현은 시대적 당위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여자대학의 출현 또한 시대적 당위였다. 한국 사회는 남녀의 구분을 엄격하게 해왔던 오래된 전통이 있으며 성별은 오늘날에도 인간을 규정하는 일차적 범주이다. 내외를 심하게 구분했던 문화 안에서 여자대학은 그 존재의미가 있었지만 동시에 그 역할은 이중적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교육의 범주 안에 머무는 한편으로 여성 자의식을 고양시킴으로써 주체적 여성을 키워 그 범주를 넘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들의 삶은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과연 보기만큼 자유로운가? 오히려 더욱 정교해진 권력이 된 문화 안에서 인간의 자유는 위협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 여성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성적인 매력과 지적 능력 모두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성형과 다이어트는 거의 일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누구나 자기 스스로의 고유한 존재가 되는 자유를 갈망한다. 그대들은 어떤 자유를 갈망하는가?

대학이 약속할 수 있는 자유는 무엇보다도 높은 정신과 지성이 가져다 주는 자유이다. 지성과 상상력에 의해 인간은 거친 자연과 사회적 억압을 넘어서서 참된 자기가 되는 독립을 성취할 수 있었다. 울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가난한 여성 작가에게 필요한 것이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설파하였다. 이제 복잡다단한 21세기 사회를 살아갈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의 지성, 유연한 사고력과 전문적 기술능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3차 산업혁명이라고도 명명되는 미증유의 변화 속에 살고 있다. 친숙했던 모든 것들이 변하고 있다. 여성 삶의 특성을 반영한 고도의 지적 환경을 구축하여 여성 교육의 새로운 동기를 내재화시킬 수 없다면 여자대학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왜 지금 무엇을 하자고 이 자리에 있는지, 다른 곳에서 보낼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을 왜 이곳에서 보내고 있는지, 우리 모두 물어야 하는 물음이다.

한 세기 전 여자대학의 모델은 이제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다. 남자대학으로 간주되었던 대학들이 여학생들로 반(半)이 채워지고 있다. 나는 영국 최초의 여자대학이라는 거튼 대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며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 대학은 아마도 존재이유를 상실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에 있어서나, 한 제도에 있어서나 그 존재이유는 밖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내적인 격발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새로운 꿈을 안고 출발하는 새내기들로 교정은 불안한 긴장과 기대감으로 분주하다. 이 분주함이 이화인들의 내적 격동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축적되어 여자대학으로서의 이화가 또 다시 내적으로 격발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